[알리시아 크바데 개인전]
페이스 갤러리 (12/10~1/22)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폴란드 태생의 현대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 1979~)의 전시가 페이스 갤러리와 쾨닉 서울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의 주관성에 대해 다루는 작품으로 현대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크바데의 개인전 소식에 서둘러 페이스 갤러리를 찾았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 치여 살다 보면 우주고 과학이고 모두 잊고 오늘의 계획, 혹은 오늘의 휴식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가 정해 놓은 24시간의 틀 안에서 익숙하게 매일을 보내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은 우주와 존재에 대한 생각보다는 퇴근 후 먹을 저녁 메뉴가 더 중요해진다. 알리시아 크바데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러한 일상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물리적 세계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갤러리에서 만난 알리시아 크바데의 작품을 보며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중력, 시간, 공간을 비틀어 낯선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은 내가 인지하는 일상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2층 전시장
I’m fascinated with the borders between science and suspicion.
All the in-betweens. / Alicja Kwade
빗방울이 수면에 떨어졌을 때 만들어지는 파동, 충격에너지, 분산된 균형 상태, 엔프로피와 같은 복잡한 이야기들이 설명문 앞뒤로 빼곡히 적혀있다. 수학과 물리와는 거리가 유독 먼 나는 복잡한 설명은 내려두고 작품 앞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고로 이어지는 작품의 해석은 주관적일 수 있다.
인식의 우연성, 조건성, 구성성이라는 주제는 이번 전시의 다른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현실의 여러 상황은 동시에 일어나고, 상태는 불안정하며, 임의의 합의는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 페이스 갤러리 전시 설명 중
작품 속에는 무수히 작은 조각들이 흩어져있다. 다가가 살펴보면 시곗바늘과 자의 파편들이다. 인류는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합의를 했다. 전 세계는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었고, 나라마다 단위의 차이는 있어도 일정한 길이나 무게에 숫자를 메겼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시간은 자로 잰 듯 분명하고 균등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흐르지만, 몰입의 순간에는 무엇보다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무게나 길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3층 전시장
여러 개의 시곗바늘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미세하게 다른 각도로 배치되어 있다. 가까이서 시곗바늘을 하나씩 관찰하다 보면 원형 배치 때문인지 아니면 시곗바늘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흐르는 시간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째깍째깍 소리마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러나 사실 작품 속의 바늘은 미동 없이 그 자리에 박제되어 있다. 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을 박제해 둔 작품 속 바늘을 바라보며 동시에 흩어지고 있는 나의 찰나의 시간을 느낄 때. 순간 시간 단위로 쪼개 적은 나의 계획들이 우주적 시간 앞에서 모두 사소해져 버린다.
얇은 철사에 매달린 돌 역시 익숙한 개념과 감각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모빌 형태로 매달려 있는 돌은 바람에 따라 살랑 흔들리기에는 너무 굵고 단단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 속 돌멩이들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난 듯 가볍게 매달려 있다. 이처럼 익숙한 감각과 인식을 자극하고 비트는 그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내가 느끼는 감각, 중력, 지구 전체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른다.
전시된 작업들은 우리 자신의 감각적 지각을 탐구하기 위한 도구다. 이들은 주변 세계와 그 내부에 놓은 장소의 조건성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도록 균열을 낸다. 그러나 이 균열은 우리의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가 관찰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될 것이다.
/페이스 갤러리 전시 설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작업은 <Silent Matter> 이었다. 여러 개의 유리 박스 속에 작은 돌이 배치되어 있다. 투명해 보이는 유리 박스에는 거울로 된 면이 있어 일부 돌멩이는 실제가 아닌 반사된 형상이다. 진짜 돌멩이를 찾아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여 보지만 이내 포기하게 된다. 설치된 거울은 하나의 돌을 무수하게 복제하기도 하고 어떤 형상은 각도에 따라 평면적 이미지로 보여지기도 한다. 투명하게 반대편을 그대로 비추기도 하고 같은 면을 복제하기도 하는 이 조각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익숙한 공간의 왜곡을 경험하게 된다.
3층 전시장 외부 테라스에는 커다란 두 개의 콘크리트 벽 사이를 얇은 스틸 파이프가 관통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우주에서 툭 떨어진 것만 같은 행성의 무늬를 한 크고 작은 대리석 구가 무심히 놓여 있다. 밀도와 질량이 다른 세 종류의 재료가 한데 섞여 익숙했던 무게와 중량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테라스 건너편의 이국적인 벽돌 건물과 해가 뉘엿뉘엿 지는 밤과 낮 사이의 시간.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처럼 모든 것이 낯설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잠시 빠져들었다.
[페이스갤러리]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67
화 - 토요일 10:00 AM - 6:00 PM (*일요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