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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의삶을지원 Dec 09. 2023

할머니의 이북식 만두

 내 외할머니의 첫 번째 추억은 큼지막한 손만두였다. 할머니는 이북분이셨기 때문에 만두 역시 이북식이었는데 만두피부터가 굉장히 크고 소도 많이 들어갔다. 큰 특징적인 재료도 없었다. 그저 인상 찌푸려지도록 시어터진 김치에 간 돼지고기, 그리고 후추 엄청 많이가 다였는데 이상하게 만두는 누린내 하나 없이 참 맛있었다. 나는 외갓집 가는 걸 꽤 좋아했는데 겨울에 외갓집은 가뜩이나 좁은 방에 큰 상 두 개가 가득 차고 식구들이 꾸역꾸역 모여 앉아 만두를 빚었다. 하루종일 찜기가 내뿜는 수증기의 눅눅함이 싫지가 않았다.


 아무리 이상 기온으로 더 이상 춥지 않은 겨울이라지만 겨울엔 아무래도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만둣국에는 만두가 서너 개 들어가고 다른 부속 재료 없이 후추를 치고 그리고 식초 몇 방울 뿌리는 게 전부지만 만두를 아무렇게 깨서 국물과 호호 불며 먹는 그 맛. 나의 입과 코, 머리는 아직도 만두 맛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오랜 시간이 더 흘러 내가 할머니 나이가 돼서도 그 맛은 기억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제 두 번 다시는 '완벽하게' 재생될 수 없다. 할머니는 이미 십수 년 전 돌아가셨고 찬바람 불면 외가 식구들은 아직도 만두이야기를 하지만 흉내만 낼 수 있을 뿐 조금씩 하자가 생기는 만두 탓에 영영 완벽한 그 맛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남았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너무나 모진 분이셨고 만족을 모르셨다. 어려서는 몰랐고 커서 내가 대학교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살 때에 비로소 내 엄마를 미워하고 그래서 나도 미워하는 할머니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을 때 난 엄마에게 진심으로 안쓰러움을 표했었다.

우리 엄마는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우시지 않으셨고 난 이해했다. 아직도 할머니는 인자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당신은 없다. 당신이 만들어주시던 완벽한 이북식 만두도 없다. 내가 원치 않아도 더는 그들을 만날 수가 없다. 내가 그치길 바라지 않아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이제 없고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만 완벽히 재생되는 것이다.

 

 깜빡깜빡 잘하고 식후면 어김없이 졸고 그 구불구불 복잡한 서문시장 길도 누구보다 잘 알던 할머니. 어린 나이 전쟁통에 월남해 줄줄이 아이들 낳고 사느라 다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며 평생을 한탄하던 할머니. 먼 훗날 어느 날 당신을 다시 만나 당신이 끓여주는 만둣국 한 사발 앞에 두고 우리는 정답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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