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한 석 달 정도만 하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 다짐하고 시작했던 택배업이 어영부영 1년이나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아직 내 손이 많이 필요했던 두 딸아이에게도 등보이며 출근한 지 1년! 식상하지만 그래서 정확한, '유수와도 같은' 1년이었다.
물론 내 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오전 6시 10분에 울리는 알람보다 내 몸이 먼저 깨어나게 될 정도로 몸이 많이 적응하게 되었고, 사람 많은 곳에 물건들을 들고 들어가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 그래도 주말이나 방학에 아이들 옆에 있어줄 수 없고, 또 지금 내가 브런치에 집중할 수 없어 글 쓰는 즐거움과 독자 여러분을 자주 뵐 수 없다는 건 여전히 서운하다.
일단 1년간 사장님이자 남편과는 수도 없이 싸우고 배우고 성장했다. 일을 전혀 모르던 초기에는 남편이 서운하게 해도, 엄하게 일을 가르쳐줘도 그저 참고 배웠다면, 이젠 돌아가는 사정도 밝아지고, 이 일의 반은 나도 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효율적이면서 안전한 배송을 위해 의견도 내고 남편이 (내 생각에) 고루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따끔하게 비판도 하게 되었다. 가득 찬 고객님들의 짐이 점점 줄어들다가 마지막 물건까지 탈없이 댁으로 운반되는 일은 생각보다 보람된 일이다. 내가 고객 댁으로 그저 일없이 가져다 드리는 일이라 일은 심플하다. 그러나 생각이 복잡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흥미로운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유로 힘들게 하거나 소리 지르고 화내는 분들 때문이 아니다. 나는 최대한 건조한 상태로 일을 임한다. 그것이 1년간 터득한 내 마음가짐이랄까. 하지만 종종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긴다. 예고도 없이.
첫 번째는 작년 초가을 즈음이었다. 지역에서 유명한 부촌의 대단지 아파트였는데 반품 물건을 꼭 받아와야 된다는 회사의 요청이 있었다. 그 댁은 반품을 신청하시고 한 달 가까지 물건을 주시지 않아서 꽤 유명한 댁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해결될까 인사말도 연습하고 방문했는데 뜻밖에 어떤 꼬마 아이가 집애서 나와서는 엄마가 아파서 잘 모르겠다고 나에게 안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 보였는데 아이는 맨발로 문 앞 복도를 서성이고 있다가 날 보고는 택배 아줌마다!라고 뛰어와 안긴 것이다.
"엄마가 아프셔?" "웅.. 누워계셔 계속. 아줌마 근데 가지 말고 나랑 여기 있어줘~ "라며. 딸 같은 아이가 내 팔을 잡아끄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무릎에 앉혀 발바닥을 털어주고 있는데 아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화를 냈다.
"남의 애한테 뭐 하는 짓입니까? 뭡니까?" "......."
택배일하며 개한테 물리고도 계속 일하는 멘털인데 나도 모르게 역정이 났다.
"고객님, 저는 oo택배 기사인데요, 반품 때문에 왔습니다. 본사에서 반품회수가 안된다고 하셔서 고객님께 여쭤보러 온 거예요, 그런데 따님이 맨발로 나와있어서 딸 같아서 제가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딸이 있어요.....?"
"네.. 엄마가 아파서 모르겠다고 했는데 발 다칠까 봐.. 죄송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
아이엄마가 장기간 와병 중이라 잘 몰랐다고 하시며 사과하시고 물건은 제조사와 보상 협의 중이었다고 나중에 직접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일은 정리가 되었다. 문제는 그 아이였는데 인사하고 내려가려는 나에게 안겨서 서럽게 울었다. 짐작컨대, 아이엄마와 내가 비슷한 연령대였으리라. 아이 아빠가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왠지 마음이 쓸쓸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아이 머리라도 빗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일은 또 없겠지만 난 이 날 이후로 작업복 주머니에 사탕 몇 알을 넣고 다니고 있다.
두 번째는 올해 초, 맹추위가 심하던 날이었다. 택배기사들은 의외로 겨울은 덜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기록적인 추위엔 나도 도리가 없었다. 장갑도 두 겹 끼고 조끼에 패딩을 입어도 결국 몸살기가 있는 상태로 일을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리던 자전거 타신 고객님을 도와드리고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많이 춥죠?" "네.. 오늘은 정말 춥네요. 그런데 이렇게 추운데 자전거를 타고 어떻게 오셨어요~ 저는 차로 이동해서 괜찮아요~"
"이거 사러 좀 멀리 갔다 왔어요"
내 엄마 같은 얼굴의 그분은 품에서 붕어빵 몇 마리를 보이셨다.
"이거드시면서 해"
하나도 아닌 두 마리나.. 올 겨울부터 밀가루, 계란 수급이 어려워 제과품들 가격이 많이 올랐던데 죄송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죄송해서 어떡해요, 저는 드릴 게 없는데.... "
"아니야. 맛있는 곳이니까 뜨거울 때 먹어요."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돈 벌려고 나와서 춥든 덥든 어쨌든 돈 벌어가는 일인데 이런 나에게 조건 없이 음식이며 마음이며 나눠주시는 분들이 그리 많은지.. 그날 차에서 붕어빵 먹으며 눈물이 많이 났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 이 분은 매주 만나는데 우리가 배송 이동하는 노선에서 마주치는 노인 목욕차로 봉사를 하시는 분이다. 처음엔 좁은 골목을 다 막아 둘러가야 해서 짜증이 좀 났는데 하루는 남편이 음료수 두 병을 난처한 얼굴로 받아온 게 아닌가? 바로 그 차의 운전기사분이었다. 이렇게 길을 막고 1~2시간은 차를 주차해야 해서 욕도 듣고 싸움도 났는데 그때마다 음료수를 싣고 다니시며 일일이 미안함을 표했다고 하셨다. 아니 좋은 일 하시는 분한테 화낼 이유가 없는 건데... 내가 부끄러워졌다. 매주 수요일, 우리는 일부러 지름길을 두고 빙 둘러가야 하지만 마음은 너무 좋다. 매주 그분을 뵐 수 있으니. 매주 공짜 음료수를 받기 힘들어서 다른 골목으로 몰래 지나쳐가지만 굳이 따라오셔서 간식거리를 손에 쥐여주신다. 세상엔 아직 천사가 있다, 아주 조용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1주년이다. 여자 몸으론 버틸 수 없다던 택배 업을 이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이 많은 인연들과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쌓아나간 소중한 1년이다. 겁 많고 의욕 없던 나의 인생 제2막도 현재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