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쏘았던 날
미래를 경험하고 싶어 가본 곳들
물건을 사면 설명서를 꽤 오래 읽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전기그릴의 예열 표시와 온도 조절법, 세척법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새로 산 그릴은 혹시나 다를까 해서였다. 직접 코드를 꽂고 딱 10분을 기다렸다가 빨간 원의 색이 진해질 때까지 기다리기! 예열해보기! 다양한 버튼 작동해보기! 그리고서야 나름의 성능 테스트를 끝낸 성취감이 들곤 했다. 더구나 능숙한 최초 사용자가 되어 가족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에 스스로만 느끼는 폼마저 낼 수 있었다. 이로서, 사물을 직접 보고 써보고 경험해가는 생활방식이 일상 곳곳에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3년 전 3월 어느 날의 기동력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보아야 관점이 생기고 해 봐야 평할 수 있다는 데에 인공위성을 한 번이라도 보고 오겠다는 이유를 두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주비행사가 될 계획은 없으니 전시된 위성을 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목표가 결심이 되자, 우리 팀 다섯은 대전으로 향했다. 쏘고 난 다음의 위성이 어디로 갔는지 남들은 별 관심을 두지도 않지만 우리 팀의 몇몇은 쓸모없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왠지 내 몸속에서는 기대감이 충만해졌다고 믿었으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날 도착한 항공우주연구원(kari)의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1층에서 한국 항공우주의 역사와 위성들 그리고 우주 비행사복 등을 둘러본 후 연구동은 개인 견학이 어렵다면서, 시험장마다 어떤 일을 왜 하는지 경진영 연구원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지금 같은 펜데믹 상황이 아닌데도, 연구원들은 방진복을 입고 출입을 한다고 했다 화장품과 향수를 쓰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미세한 입자에도 시험 결과가 달라지며 성능의 평균치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체험 학생들이 전무한 평일 오전, 사람과 위성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덩그러니 서있는 팀원 다섯은 점점 흥미진진 해졌다. 나에겐 그 해에 있어 최대 구경거리가 되었던 날이었다. 또한 몇 해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화창하고 생생한 기억이 되었다. 역사 속 명성을 지켜왔던 천리안과 아리랑호는 빛이 바랬다. 유리장 속에 숨 죽어 있지만 당장 괴도 루팡이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내 눈에도 탐날 정도였다. 비록 직접 시승하지 않았고 설계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위상을 떨친 위성의 일부 또는 모형을 본 이후 난 누리호 2차 발사 뉴스에 더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2021년 10월 21일이 되자 이 거대한 걸작들의 후속작이 세간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우리 기술 최초 발사체인 누리호 KSLV 2 (korea space launch vehicle)를 쏘아 올린 날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 발사되었던 나로호는 엔진과 발사체 등이 러시아의 기술이었지만 이번 누리호는 연구원들의 노력과 기술 덕분에 얻은 성과였다. 발사체에는 전체3단의 엔진이 실려있고 위성모사체가 원하는 궤도에 오르도록 11년 동안의 연구결과를 세상에 내 놓은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1단은 75톤급 액체엔진 4기, 2단에는 75톤급 액체엔진 1기, 3단에는 7톤급 액체엔진 1기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3단 로켓의 연소시간이 짧아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궤도는 여러 뜻을 가지고 있지만 트렉이나 레일로드가 아닌 오빗(orbit) 을 말하는데, 위성과 함께 일컫는 궤도는 고도에 따라 나뉨을 알 수 있다.
하늘 위를 선분을 그어 나누듯이 250 높이에 하나, 2,000 높이에 하나 그리고 36,000에 점을 찍어놓기로 한다. 첩보용이나 지구관측용은 낮은 고도에서 이루어진다. 우주정거장도 비행사들이나 물품이 오가야 하므로 저궤도인 350km에 있다. 비교적 낮다. 간혹 우리 학생들은 인공위성의 임무가 GPS용(항법위성)이 다 인 듯 착각할 때가 있지만 아니다. 또한 GPS는 애초에 길치를 위한 기술력이 아니다. 항공기술이다. 이 항법위성은 건물을 찾을 때나 이동수단들의 길을 알려주어야 하니 훨씬 높은 고도 2만~3만 중궤도에 위치한다. 무궁화(통신), 천리안(기상)이 한 번에 넓은 지역을 관찰해야 해서 세계를 광 시각적으로 바라본다. 중계와 날씨 예측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 3만 6천 km인 정지 궤도에 있다.
바로 일주일 전 발사한 누리호는 하늘 위 700km까지 향했다. 일반적으로 고도 100km 이상을 우주 공간의 시작으로 정의하는데, 700킬로까지 치솟은 이번 위성은 나름 추진력을 탄탄하게 갖춘 것이다. 목표로 정한 700km 고도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추진력을 끌어내는 데 발사체는 숱한 실험을 해왔다. 발사체인 로켓이 한 번 타올라 치솟고 첫 번째 발사체(로켓)가 떨어져 나가면 두 번째 발사체가 타오르면서 더욱더 솟아오를 수가 있다. 다시 말해, 두 번 추진력을 내야 한다. 물론 로켓의 엔진은 연료와 산소가 충분해야만 이 일을 해낸다. 하늘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하니 산소가 필요하며, 충분히 연소되어야 그 힘으로 추력을 낸다. 하지만 이번 누리호 KSLV 1은 3단 엔진의 연소시간이 짧아 궤도에 안착되지 못했다. 두 번의 발사체(로켓)가 떨어져 나간후 위성을 감싼 페어링이 무사히 분리되었고 3단 로켓이 조금만 더 힘을 냈다면 궤도에 올랐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으며 3단 로켓이 46초만 더 연소되었다면 하며 아쉬움이 남았다. 내년 5월에 예정인 2차발사에서 연소시간과 페어링이 원활해서 궤도에 꼭 진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누리호가 발사된 현장에는 인공위성 연구동을 둘러보고 온 날로부터 한 달 뒤에 가게 되었다.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고 바람의 속도나 습도가 적당하니, 위성시험이 있을 거라는 교육담당자의 인사는 더욱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번 10월 21일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3단 액체로켓 누리호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2022년 5월에 있을 2차 발사에 필요한 부품들 역시 현재 대전에서 조립이 될 예정이다. 자동차 부품이 2만개인데, 누리호 부품이 37만개라니! 연구관계자님이 '메이드 인 대전'이라 부르는 이유는 대전 유성구 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 부품 조립과 숱한 실험을 통해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호 발사 현장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우주센터에 옮겨진 누리호는 약 11년 7개월 동안 개발되어 발사 전날인 10월 20일에 나로우주센터에 옮겨졌다. 여기서 무게 200톤 길이 47.2m의 누리호가 자력으로 순수 개발된 발사체라는 점은 러시아 일본 프랑스 다음 우리나라다.
새로운 과학을 접하게 되면 정보를 꽤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인공위성의 무게와 발사온도와 몇 키로미터 상공까지 올라갔는지 다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새로난 과학 기술은 역시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누군가의 연구와 무언가의 발전에 관심 갖고 과학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에 기시감이 들곤 한다. 일상 곳곳에서 과학과 교류하는 우주먼지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