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이지 않은 미래

과거를 바꾼다고 현재가 달라질까

by 나날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군대 다시 가는 꿈,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꿈. 그 시간을 지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꿔보았을 것이다. 전후로 삶의 모습이 크게 바뀌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나 역시 종종 꾼다. 어떤 강박적인 기억을 불러오는 꿈이라기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더 큰 가능성이 열려 있는 기분이 드는 꿈이다. 뭐든 잘 될 것 같은, 아직 내 인생의 어떤 페이지가 채워지지 않고 앞으로 채울 일만 남은 것 같은 가능성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느낌. 그 느낌을 간직한 채로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나 수능 보지 않았었나? 뭐야 나 이미 대학 졸업까지 했잖아.'


꿈속에서도 현실을 자각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 울려 퍼진다. 아직 꿈은 깨지 않았다. 시간 감각이 조금 뒤엉키고 꿈을 꾸고 있는 내가 속한 시간을 자각했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이런 꿈에서 깨고 나면 나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과거를 바꾸고 싶은 것일까?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가 달라질까?"


이런 답 없는 질문을 하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바꾼다 해도 현재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작은 물줄기를 바꾼다고 해서 현재의 내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럼 또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재의 내 모습을 바꾸고 싶을 만큼 지금 불만족스러운 상태인가?"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아니다, 라는 답을 내린다. 불만족스럽다고 해도 과거를 고쳐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거는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한 선택으로 이뤄져 있고 그 선택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그 결과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이어져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여기 서 있다는 것.


꿈속에서 느꼈던 무한한 가능성의 시선으로 뒤가 아닌 앞으로 보는 것.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덴고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현재라는 교차로에 서서 과거를 성실히 응시하고, 그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는 미래를 차곡차곡 써나가는 것이리라.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1Q84 BOOK2, 무라카미 하루키, 1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