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가는 이유
희망 없이 인간이 계속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왜 사는가?' 부끄럽게도 30년 넘게 살면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온갖 질문들이 날카롭게 파고들며 지나가는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은 해 본 적이 없다. 삶은 내게 주어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만큼 소멸, 쇠약, 사라짐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점점 낡아가고 세월의 흔적이 쌓여가고 노쇠해가는 것이 두려웠다.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에 모든 것을 바치리라 생각했다. 그런 건 없었다. 변하지 않는 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이었다. 살아있는 별이 아닌 이미 유명을 달리한 별들이 남긴 노래를 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내가 속한 이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이곳에 남긴 음악에는 불멸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었다.
갑자기 우울이란 파도가 덮쳐오자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는가, 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제하고 보니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훅하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죽어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없이 밑으로 꺼져가는 것 같은 기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상으로 올라온 지금, 그 기분은 마치 줄거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 지난 밤 꿈처럼 느껴진다. 전후 맥락을 이어 붙일 수는 없지만 미묘한 감정의 가닥은 남아있다. 앞뒤를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어떻게든 말이 되는 이야기로 정착시키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꿈.
이것이 계속 산다는 것의 의미다. 아오마메는 그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희망을 부여받고, 그것은 연료로, 목적으로 삼아 인생을 살아간다. 희망 없이 인간이 계속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전 던지기와도 같다.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는 동전이 떨어질 때까지 알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옥죄어온다. 온몸의 뼈라는 뼈가 모두 삐걱거리며 비명을 울릴 만큼 강하게.
1Q84 BOOK 3, 무라카미 하루키, 112p
그 사이에 내게 희망이 생겼는가, 다시 질문한다. 연료로 삼고 나아갈만한 희망. 그렇다, 우울의 늪을 헤쳐나가는 사이 그것이 조금씩 자라났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맑고 영롱하고 순수한 어떤 것은 아니다. 내가 겨우, 간신히 희망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조금은 더 살만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들을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해 보자. 거창하게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허영 없이. 그저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 하찮은 것을 하기 위해 내가 내민 용기는 결코 하찮지 않다. 다른 누군가는 모를지라도 나는 그 용기의 크기를 알고 있다.
그렇다, 내 희망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바꾸거나 이루고자 할 때는 한없이 무겁기만 했던 짐들이 타인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짐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커졌다. 같은 책에 이런 말도 나온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재생할 수 없다는 거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재생할 수 있어."
내 안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타인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알아야 한다. 내겐 그것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