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건네는 말

내 안에 있던 말들을 꺼내는 순간

by 나날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뭔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게 마련이다. 잃어버리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다시 되찾는다 하더라도 "당연한 무엇"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이 되어버렸으므로.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 <전갱이의 맛>에서 화자와 이혼한 남편은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달변에 다변이었던 그는 말을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며 타인과 의사소통을 위한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건 남에게 향한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원래 거기 있었던 말을 발견하는 것이었다고.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5년쯤 전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오른쪽 발등 인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탄 첫날이었다. 갑자기 보드를 타게 된 건 그동안 내 안에서 나를 움직여 오던 어떤 동력장치가 점점 녹이 슬어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롱보드를 타는 영상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항상 발을 땅에 딛고 다녔다. 행여나 넘어질까 땅만 보며 조심히 움직였다. 보드 바퀴 높이만큼 땅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이 거기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 위에서 춤추고 싶었다. 그 세계에 대한 무리한 갈망으로 인해 오른쪽 인대를 다쳤다. 그 뒤로 보드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이건 매우 슬프고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무심하게 말하던 의사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때의 나에겐 저주 섞인 형벌을 내리는 것으로 들렸다. 당시 나는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 배제를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내 안의 어떤 것이 소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 시도했던 일에서 오히려 날개가 꺾인 기분은 정말 제대로 저주를 받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병가를 여유롭게 쓰고 쉬는 시간도 가졌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동력이 아니라 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반강제적으로 병가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를 굴러가게 하는 메커니즘에 쉼이란 톱니바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쉬는 건 쉬는 게 아니었다. 발등에 박은 심 때문에 퇴원한 후에도 몇 달간 목발을 짚고 다녔다. 당연히 약속을 잡거나 누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어딘가를 갈 수 있는데 가지 않는 것과 갈 수 없는 것의 차이는 컸다.


입원해 있는 동안 장마가 시작됐다.

다인실에 있다 보면 새벽에 타인의 기척으로 잠이 깰 때가 있다. 평소에는 쉽게 한밤중에 깨는 편이 아닌데 그렇게 잠이 깨면 한참 동안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다시 잠들기 힘든 밤이면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병실 구석구석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도 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이곳엔 누군가가 쌕쌕거리며 잠자는 숨소리, 희미하게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끙끙대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럴 때면 내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밖에 내다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무언가가 밖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다. 병실을 서성일뿐. 그때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업무 서적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한동안 나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게 말을 걸고 내 안에서 하는 말들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고 창밖만 보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내가 밖에 풀어놓았다고 생각한 나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나에게 말을 건네며 희미하게나마 잡아나갈 수 있었다.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죽어있는 듯 차갑고 선득하던 병실 침대 난간의 감촉을 느끼며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그때를. 비록 지금 당장 구원으로 나아갈 순 없겠지만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나에게 들려주었던 작은 이야기들을.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 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나는 잠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중 전갱이의 맛,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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