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를 좋아한다. 내 편협한 독서이력에 십 대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읽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성실하게 글을 써 왔기 때문에 아직도 내가 읽지 않은 소설, 글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마디로 아직 덕질할 소스가 풍부한 살아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름 꾸준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왔지만 왜 좋은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어딘지 감상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을 뿐.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다른 지인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었을 때 드는 그 느낌 있잖아요. 좋은데 왜 좋은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나 역시 그랬다.
최근에 나온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고 비로소 왜 좋은지 알게 되었다.
타고난 반골기질, 그런 내면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파고 들어가는 집요함, 무엇보다 그것을 뭔가 근사한 표현으로 어딘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필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가 소설가이자 한 명의 개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절하다시피 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쟁이라는 광기의 한 복판에서 우연히 살아남아 우연히 어머니를 만나 우연히 자신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에 대해.
운이 좋아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 기억은 분명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 상흔은 아들인 자신에게 부분적으로 남았고 잊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녹여냈다.
그 상흔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인 포로를 처형한 모습에 대한 트라우마이다. 아버지가 직접 가담했는지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불단을 앞에 두고 오래도록 경을 외셨다. 누구를 위해 독경을 하는 것이냐는 아들의 질문에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전쟁에서 죽은 동료 병사와 당시에는 적이었던 중국인들을 위해서라고.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18p
전쟁의 상흔은 아버지의 의식에서 아들에게 그렇게 남았다. 그 상흔을 아들은 잊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같은 책, 51p
몇몇 퍼즐들이 맞춰진다. <중국행 슬로 보트>라는 단편에서 중국인에 대해 쓴 이야기, 그리고 예루살렘상을 수상하여 이스라엘에 가서 밝힌 수상소감.
2009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예루살렘상을 수상했을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를 공격하여 1300여 명의 사람이 사망했고 그들의 대부분이 비무장 시민, 어린이와 노약자였다고 한다. 불매 운동까지 거론하며 수상을 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도리어 수상을 수락하고 이스라엘에 간다. 그리고 수상 연설에서 보기 좋게 한방을 날린다. 그것도 그만의 방식으로.
그 연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쟁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 매일 아침 독경을 하던 아버지를 회고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삼가려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소설가의 중요한 책무이지만 그 판단을 어떻게 전달할지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라고. 그러니까 그는 픽션으로 이야기로 전달할 것이며, 직접적인 메시지 대신 한 가지 비유로서 매우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소설을 쓰면서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는 한 가지 말이 있다고. 그건 바로,
만약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그 벽에 부딪히는 달걀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의 편에 설 것이다.
소설가로서 달걀, 약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옳고 그름은 다른 사람들이 혹은 시간이, 역사가 판단할 일이라고.
어쩌면 이건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소설이나 글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읽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또 다른 책을 불러들인다. 사놓고 몇 페이지 넘겨보고 말았던 <태엽감는 새 연대기>를 읽을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