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의 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장관인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그 바다의 수심 8m쯤에서 나는 패닉에 빠졌다. 고막이 팽팽해지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난 물이 무서웠다. 열한 살 무렵 수영을 배우다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 한복판에서 혼자 허우적거리다 겨우 선생님에게 발견되어 안전한 발판 위로 옮겨졌다. 인공호흡을 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10초에서 20초 정도 허우적거렸겠지만 그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 이후 수영강습을 중단했다. 그런 내가 스노클링도 아니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니. 1m씩 내려가며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8m 근방에서 패닉 상태가 되고 말았다.
시작은 그랬다. 액티비티 천국인 호주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다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돈보다 중요한 게 경험이라며 번지점프, 스카이 다이빙, 만년설 체험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호주는 학기 중간에 일주일 정도 쉬는 주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난 한국 친구들과 호주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도착한 케언즈. 아름다운 산호초로 유명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로 향하는 여러 선박 중 우리가 선택한 건 화려한 크루즈가 아니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블랙 펄의 미니 버전인 듯한 나무로 된 돛단배였다. 배의 선장은 케언즈의 바닷바람을 수십 년간 맞은 듯 약간 뻣뻣해 보이는 회백색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묶은 호주인 할아버지였다. 그는 수영을 못해 망설이는 나에게 초급 코스는 10m까지만 내려가며 수영을 못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며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영을 못해도 상관없다는 말과 다른 친구들 모두 바닷속 저 어딘가에 있을 때 혼자 물 위에 떠 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스쿠버 다이빙이 포함된 코스를 결제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물속에서 패닉에 빠지게 되리란 걸.
우리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안내해줄 사람은 약간 능글맞은 미소 패시브로 장착한 영국 출신 젊은 남자였다. 나는 미리 수영을 못한다며 불안한 눈빛을 보냈고 그는 "스위티, 허니"를 남발하며 물속에서 패닉 상태에 빠지지만 않고 자신을 잘 따라오면 문제없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동양 여자를 작고 귀여운 동물을 보는 듯한 태도로 대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장비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과 내려가는 방법, 다 내려갔을 때 자유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수신호에 따라 다시 올라오면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1m마다 매듭으로 표시된 줄을 따라 자신과 함께 천천히 내려가면서 모두의 상태가 괜찮은지 체크하고 천천히 내려갈 거라고 했다. 중간에 못 하겠다 싶으면 엄지손가락을 들고 위를 향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올라가겠다는 신호를 하라고 했다. 근시인 나는 장비를 착용하고 깊은 물속에 들어가려면 안경을 벗어야 했기에 강사의 가장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1m, 2m, 3m 천천히 내려갔다.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안내에 따라 내려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내려가고 나면 내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세상이 펼쳐질 거라며. 그런데 내가 생각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물 밑 세상에서 마주한 낯선 소리였다. 그건 그냥 조용한 고요가 아니었다. 물 밖에서는 의식하지 않았던 나의 숨소리는 너무도 크고 생생하게 들렸고 고막을 압박해오는 듯한 바다의 울림이 이어졌다. 그건 마치 내 몸속 장기를 하나하나 빼서 그것들이 꿀렁거리며 동작하는 소리를 피부로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8m 구간에서 나는 내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다급하게 영국인 강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는 못하겠다, 올라가겠다고.
그 순간 "스위티, 허니"를 외치던 강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몇 번 젓더니(쒯, 위급한 상황이면 신호를 보내라며!)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손바닥을 펼쳐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자기 호흡에 맞춰 심호흡을 하란 뜻이었다. 당장이라도 물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많이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차례 숨을 쉬었을까. 귓속으로 물이 들어와 내 안을 잠식할 것 같은 공포가 조금씩 사라지며 내 호흡 소리도 더 이상 공포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2m를 더 내려갔다.
내가 근시라고 얘기했던가? 실은 나는 마이너스 디옵터, 심한 근시에 속한다. 그렇게 내려간 바닷속은 신기하긴 했지만 흐릿했다. 멀리서 물고기가 흐릿하게 나타났다 내 주변을 돌며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릿하게 멀어졌다. 같이 간 친구가 수심 10m에서 찍을 수 있다던 일회용 카메라를 이용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결국 여행이 끝나기 전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물속에서 내 기억은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 시끄러운 물속 세상에서 다급하게 주고받은 손짓이었다. 눈과 손을 사용한 절박한 의사소통. 나를 패닉에 빠지게 한 것이 소리와 진동이었다면 나를 안정시켜 주었던 건 눈앞에 보이는 이의 손짓과 나를 향한 다정한 눈길이었다. 그랬다. 물밖에서는 꼴 보기 싫었던 능글맞은 미소와 눈웃음은 물속에서는 나를 안심시켜주는 지긋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아마 그도 내 불안한 눈빛에서 실제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잠시 당황했던 것임을 읽었던 것일 수 있다. 그때 내가 그의 표정과 손짓을 제대로 보지 않고 계속 패닉에 빠져 위로 올라가겠다고 했다면 또 다른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보았다. 농인 부모를 둔 이길보라 감독은 그들의 현재 삶을 따라가며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이뤄 자신과 동생을 키워냈는지 그 궤적을 따라 보여준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살며 소리가 아닌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감독의 부모는 생기 넘치고 행복해 보였다. 심지어 너무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얘기할 때조차 즐거워 보였다. 몇십 년 산 부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향한 눈빛에는 상대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은 손짓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눈빛으로도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바로 엄마가 욕실에서 김장 김치를 절이느라 등을 지고 앉아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빠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손짓을 보내지만 뒤돌아 있는 엄마는 본인의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배추를 절이고 있다. 그러자 아빠는 화장실 불을 껐다 켠다. 곧 엄마가 돌아보고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며 지나간다.
이 짧은 장면이 인상 깊었던 건, 불을 켜고 꺼서 자기를 바라보게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뒤돌아선 채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내 말을 듣지 못한다면 나는 등을 두드렸을 것이다. 조명을 켜고 끌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랬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의 변화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개념이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잘못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장면은 내게 매우 낯설면서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음성 언어로 어디까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중학교 국어 시간인가,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음성이나 문자 언어가 아니라 몸짓이나 표정, 뉘앙스 표현 등을 통한 의사소통을 지칭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왜 손짓과 몸짓은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에 나오는 "침묵의 시대"를 읽으며 소리가 아닌 몸짓가 눈빛으로 많은 의미를 나눴던 기억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최초 언어는 손짓이었다. 사람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언어는 전혀 원시적이지 않았으며, _손가락과 손목의 섬세한 뼈를 이용한 무한한 조합의 동작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씀, 민은영 옮김, 111p
앞서 말했던 이길보라 감독의 신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에서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반응도 반응이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사진과 글이 아닌 수어라는 수단으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과 글로는 담을 수 없는 미세한 얼굴 표정과 주름,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얼굴, 버벅대는 손가락 같은 것. 이곳에서 보고 겪은 일을 수어로 설명하다 보니 그것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언어의 가능성과 표현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내가 가진 의사소통 수단들 사이에서 나만이 지닌 언어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중 "수어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길보라, 123p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모국어는 공기와 같아서 의식하지 않고 듣고 내뱉는다. 그러다 미묘한 어긋남이 발생하는 순간 오해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해를 풀고 넘어갈 방법은 말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는 다른 말을 찾았고 그 다른 말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좌절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섬세한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는데도 가닿지 않는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어슐러 르귄의 소설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마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아닌 이상 완벽한 전달은 불가능한 것인가? 역시 좌절스러웠다. 나는 몸짓과 눈빛으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나의 하루하루는 외롭다. 왜 갑자기 잘 먹던 밥을 앞에 두고 온몸을 뒤틀고 있는지, 바지를 입자고 하면 기어서 도망가는지, 왜 잘 놀다가 울음을 터트리는지, 왜?라는 물음표 투성이다. 아마 앞으로 아이가 더 커도 이런 왜라는 질문에 본인도 잘 대답을 못할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말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지만 종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순간들도 찾아온다. 서로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 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아이는 말로 나에게 응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미스터리 한 작은 몸 안에서 어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눈빛에서 미묘한 차이를 포착해내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들. 놀다 지쳐 멍하기도 하고(갑자기 한숨 같은 걸 쉬기도 한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반짝이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간절하게 무언가를 갈구하기도 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은 내가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읽어내는 순간이 아니라 아이가 내 표정을 이해하려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다. 내가 어떤 표정과 눈빛을 보내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 안에서 내가 그랬듯이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것만 같다. 내가 심술을 부려서 엄마가 화가 나거나 지쳤구나, 지금 저걸 하면 엄마가 바로 제지하겠구나, 내가 웃으면서 춤을 추니까 엄마도 즐거워하는구나, 지금 내가 귀여워 미치겠구나. 나도 모르는 속마음이 그렇게 차고 흘러넘쳐 아이에게 가닿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때를 지나왔으니까. 기억이 희미할지라도 내가 가진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가닿고 싶어 하던 그때를. 그때를 지나 언어를 익힌 이후에도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은 말을 하는 건 따로 있음을. 숨길 수 없는 그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