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
종종 "이십 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 좋아,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 다시 그 시간을 견디라고 하면, 으...(진저리)." 왜 그렇게 말하는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이십 대는 무정형의 나를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와 세계는 계속 충돌한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이십 대는 여러모로 부끄럽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다시 똑같은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바꿀 수 없는 많은 것들 때문에 다치고 깎여나가도 다시 돌아가 씩씩하게 그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이쯤에서 내 이십 대를 돌아보면 자아는 비대했고 그런 비대한 자아를 약간은 시니컬한 태도로 드러내 보이는 걸 좋아했다. 마치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너에게만 보여준다는 투로. 조금만 더 성숙한 이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어이없어 비웃었을 테고, 포용력이 없는 또래들에게는 재수 없게 보였을 테지만,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그런 나를 참고 바라보고 다치지 않을 정도로 피드백을 주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 감인 내 행동과 말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매력이라고 생각해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내 대학 생활은 덜 외롭고 조금만 초라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 별명은 "사포(까칠해서)"였고, 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이들은 나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 있었던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평범한 앗싸"였을 것이므로.
그때 내가 변덕이 심하고 까칠하고 무슨 말이든 직설적으로 내뱉는 척하면서 정작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았던 건, 실은 나 자신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이 이상은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혼란이 찾아왔다. 넓은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경험을 잔뜩 하리라 벼르고 있었던 나는 막상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움츠러들었다.
나는 "은둔자"였던 것이다.
그때 내 변덕을 떠올려 보면 이런 식이었다. 일대일 약속은 웬만해선 잡지 않았다. 내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만 참석 여부가 눈에 띌만한 모임에 가겠다고 한 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실제로 생긴 적도 있다) 가지 않았다. 그룹에서 내 존재감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면 잠수를 탔다. 그러면서도 혼자 밥 먹는다는 건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혼밥이 흔치 않던 때이기도 했다.) 혼자 방에 들어가면 정적이 싫어 무어라도 틀어놓았고 일부러 늦게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학교 근처에 혼자 산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자리에서 갑자기 불러내면 대부분 가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갈라치면 혹시 아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내 자취방에 온 적이 없었다.
요약하면 혼자 있으면 심심해했고 무리에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나에 대한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들이 필요했다. 내 이십 대는 나와 세상,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끊임없이 재던 시기였다.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어 했고 너무 멀어지면 나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며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타고나길 수줍음 많게 태어난 저자는 고독과 고립을 구분한다.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23p).
찰나의 순간에도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나처럼 세상과의 적절한 거리감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이 분명하다. 스스로를 "명랑한 은둔자"라고 부르며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가기 시작한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초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 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 - 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49,50p
나 역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이 겪어야 하는 끔찍한 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까칠한 사포에서 명랑한 은둔자로 진화했던 시기들을 한번 다시 겪어보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까이 갔다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적절한 거리를 찾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반대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인 게 익숙하고 편해졌다고 생각한 나에서 누군가와 함께 나아가는 삶. 실은 지금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힘들고 버겁기도 하다. 움츠러들었을지언정 도망가지 않았던 내 이십 대가 그랬듯 지금도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명랑한 은둔자는 오늘도 이렇게 누군가 몇십 년 전에 남긴 글을 보며 공감을 하고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걸 이렇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