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진실성

픽션과 논픽션

by 나날
나는 자신의 삶을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과 한 방에 있고 싶어요. 그 이야기에는 과장이 있고 거짓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적으로 진실인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

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105p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요즘 내가 종종 생각해 보는 질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 빚어진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타인에게 제대로 들려주고 싶다.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지 않지만 스치듯 지나간 일말의 진실이 거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필과 소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을 쓸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수필은 있었던 경험을 '그대로' 쓰고 소설은 거기에 '허구'를 가미해서 쓰면 되는 것인가. 글이란 것이 본디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는 불완전한 그릇인데, 경험을 '있는 그대로' 썼다 한들 그게 과연 본질에 얼마나 가 닿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표현하냐'일 것이다. 내 이야기를 내가 아닌 타인들에게 잘 들려주기 위해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하고 어떻게 나타낼지 고민하는 것. 그래야 가닿을 수 있다.


수필은 현실의 거울인가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슬아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내 상상을 덧대어 감정이 쌓인다. 읽는 이의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많은 고민을 하고 써 내려간 글들이다. 삶의 장면들을 선택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거짓말과 과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어떻게 상상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철저히 독자의 몫이고 즐거움이다. 이슬아 작가 역시 소설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읽는 나는 자유롭게 상상하며 빈 곳을 채우고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작가를 다 알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일 뿐이다.


소설은 거짓으로만 이루어져 있는가

소설가 제임스 설터도 얘기하다시피 소설은 작가의 삶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어떤 경험, 어떤 발상에 어떤 옷을 입혔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모습이 달라질 뿐. 그렇다면 그것을 거짓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이유는 이야기 너머의 진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를 계속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무언가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흥미롭기 때문에 푹 빠져서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 역시 모든 것이 허구는 아니라는 얘기다. 소설가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은 원래 화가 박수근에 대한 논픽션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 가난하게 살던 그가 죽은 후 비싼 값에 그림이 팔리는 것을 보고 뭔가 참을 수 없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보니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 무렵 박수근 작가와 우연히 잠시 같이 일한 것이 소설가 박완서가 경험한 것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아이러니 앞에서 박완서 작가는 무엇이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거짓말을 덧붙여 나간다. 그렇게 해서 소설 <나목>이 완성되었다.


나는 이 소설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의 화자는 누가 보더라도 박완서 작가 자신의 경험이 가장 잘 녹아 있는 인물이기에 작가를 상상하며 읽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나목>은 소설이지만 이미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가

나는 나 이외의 삶이 궁금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도 보고 인터뷰도 보고 자서전도 본다. 논픽션으로 분류될 수 있는 글들이다. 동시에 수필도 읽고 소설도 읽는다. 전자와 후자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를 읽을 때 '어떻게 구성하고 보여주는가'에 빠져서 읽게 된다. 전자는 조금 무미건조하더라도 내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읽는다. 후자는 일단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상을 덧댄다. 독법이 다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그것이 거짓과 진실의 비율이 어떠하든 거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게 곧 내가 모르는 삶의 한 단면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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