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순간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고

by 나날

IAM |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

불수의 자전적 기억

소설을 비롯한 책을 읽을 때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어떻게든 연결성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읽는다. 누군가가 마들렌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떠들고 있다 해도 인내심을 갖고 이게 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로 피어날 것이라 믿으며 읽어나간다.

(이렇게 썼지만 난 아직까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단 한 페이지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냥 거기 기억의 매개물로 마들렌이 나온다는 걸 여기저기에서 듣고 읽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줄리언 반스의 이 소설, 작가 스스로 하이브리드라고 부르는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도 그렇게 읽어나갔다.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이 책을 다 읽었을 무렵에 어딘가에 다다를 것이고 그게 어디든 작가가 펼쳐놓은 지도를 따라 기꺼이 모험을 떠나리라는 설렘으로.

마지막 두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이 책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더 구체적으로는 이 책을 쓰는 작가 자신과 이 책을 읽게 될 독자, 그러니까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는 것을.

마지막 페이지에 우리가 만나게 된 곳은 어느 카페다.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로 분주하고 진지한 여느 카페. 낯선 나라의 언어로 가득 찬 이국의 카페이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내 뇌를 때리는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국어의 홍수로 가득한 한 카페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모든 카페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카페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타인의 삶 속으로 휩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때 내 앞에 혹은 옆에 가만히 앉아, 거기 있었는지도 모르게 내 곁에 함께 있으면서 울고 웃었던 줄리언 반스가 슬그머니 일어선다. 나는 먼저 일어설 테니 좀 더 있으라는 눈인사만 건네면서. 나는 문득 그의 빈자리를 강하게 인식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모든 카페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아무것도 특정할 수 없지만 조용히 미소 지으며 눈물 흘리고 있다. 그건 슬픔도 기쁨도 아니다. 문득 던져진 질문 없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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