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대학에서는 강사로서 연봉 800엔을 받았다. 아이가 많고 집세가 비싸 800엔으로는 도저히 꾸려 나가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두세 군데 학교를 뛰어다니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 어떤 소세키도 이렇듯 분주하여 지칠 대로 지치면 신경쇠약에 걸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다소 저술을 해야만 한다. 별난 호기심에 저술을 하기 때문이라 말한다면 그러라고 하겠지만, 근래의 소세키는 뭔가 쓰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가르치기 위해 또는 수양을 위해 책을 읽지 않으면 세상에 대해 면목이 없다. 소세키는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신경쇠약에 빠진 것이다.
인생이란 상대방의 의기에 감동하는 법이다, 하는 말이 있다. 괴짜인 나를 괴짜에게 어울리는 상황에 놓아준 아사히 신문사를 위해, 괴짜로서 힘껏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위 글은 나쓰메 소세키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에 수록된 "입사의 말"이란 글의 일부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아닌 산문을 읽으며 소설 속 인물 뒤에 언뜻언뜻 느껴지는 작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책이다. 사람에 대한 시선, 어린 시절의 기억, 자신의 건강 상태 등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오래 들여다보고 뽑아내는 문장을 읽는 즐거움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아 필사를 해 둔 구절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글을 쓰다가 아사히 신문사의 제안으로 본격적으로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사에 입사를 하며 쓴 글이다. "입사"라고 하지만 일반 기자처럼 취재를 한다기보다, 신문사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소설을 연재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였을 것이다.
요즘은 퇴사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입사를 해서 글을 쓸 수 있다니! 매우 부러운 상황처럼 보이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 호황기에 접어들진 않았지만 근대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잔뜩 기회를 엿보고 있는 성장의 시대에 "대학"이라는 배경과 명예를 뒤로하고 "신문사"에 들어가 글을 쓴다는 것. 본인으로서는 명확한 선택이었을지라도 주변에서 이유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는 이 글에서 가감 없이 말하고 있다. 강사일의 수입, 자신의 현재 상태, 자연인으로서 삶을 꾸려가기 위해 그가 감당해야 했던 상황들.
뭔가 쓰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글을 써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수양을 위해 책을 읽지 않으면 세상에 면목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 말을 읽고 나서 인지, 그 전부터인지 나도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이 생기면 무언가를 읽고 쓰게 된다. 그 시간들로 인해 내 삶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변한 건 없다. 단지 내가 읽고 쓰며 지낸다는 것만으로 비어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차오르는 느낌이다.
인생이란 상대방의 의기에 감동하는 법이다.
이 말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해 본다. "의기"란 무엇일까. 사실 머릿속에 떠오른 대체어가 있었다. 살짝 비속어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갈 것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것. 그리고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것. 그것을 볼 때 우리는 감동한다. 우리가 선뜻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 그 길을 갈 때, 우리는 그 모습에 감동하고 응원하고 싶어 진다. 최근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 산문집에는 이 글 말고도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 책을 덮고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들이 많다. 이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