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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un 30. 2024

반짝 철이 드는 순간

다른 입장이 되어 본다

젊음이 무기가 되는 순간은 많다.

어떤 일을 도전할 때에도

그리고 거기에서 실수를 했을 때에도

젊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미숙하기 때문에

너그럽게 용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

신입이 실수를 하는 것이나

귀찮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더해

젊음을 무기로 당당하게 경영진에 '되바라진' 얘기를 하기도 한다.

중간 관리자가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사이다와 같은 발언을 하는 것도 젊음이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그런 후배가 있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말을 마구 해버리는 그녀를 보면서

언제 철이 드나 싶었다.

팀의 막내라는 강력한 지위로

나의 말문을 '턱'하게 막히게 하는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역시 맞지 않는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때로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데

남이 얼마나 내 맘에 들려고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랬던 그녀도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고

드디어 밑에 후배가 들어오면서

중간에 '끼게' 되었다.

(아싸!)

그리고 그 젊은 아이들과 TF로 일을 하면서

그녀는 드디어 내가 그녀를 보면 느꼈던 감정을 요즘 절감하는 모양이었다.


너무 애들이 자기들 위주로만 생각해요.

(너도 그랬거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난감해했다.


그녀에게 어려움을 들으면서 드디어 너도 철이 들었구나 싶었다.

철이 드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 부모의 처지를 헤아리듯이

내가 선배가 되어야 선배의 고충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야 기고만장함은 한 풀 꺾이게 된다.

당당하지만 되바라지지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존재다.

나도 그녀도 후배도 선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나의 이기심과 타인의 이기심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이 잠깐이라도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순간에 우리는 철이 드는지도 모른다.


부쩍 철이 든 그녀를 보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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