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김홍도, 18세기
보고 자리가 끝난 후였다. 물론 보고도 매끄럽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회장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얘기를 듣다 보면 회장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해당 사업부의 잘못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해 보였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극지방처럼 얼어붙었지만 어찌어찌 보고를 끝낼 수는 있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려고 할 때였다.
“거기 좀 앉아봐.”
회장이 담당 사업부를 주저앉혔다.
담당 사업부도 아니었건만 눈치 빠르게 자리를 뜨지 못했던 나도 어영부영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회장은 기세 좋게 담당 사업부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 중고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호되게 혼나 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의 일이긴 하나 월급을 받는 1인으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는 문득 이 그림이 생각났다.
김홍도의 서당
이 그림과 당시 풍경이 다른 점이 있다면 혼났던 사람은 울지 않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서당의 다른 학우들처럼 웃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솔직히 난 속으로 웃고 있었다. 헤헤. 서당의 구경꾼 아이들처럼.
해당 사업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신제품 콘셉트를 들고 와서 우겼었다.
시장성이 없다, 소비자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나오자마자 실패할 것이다!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얘기했으나 독불장군처럼 듣지 않고 발표를 강행했다.
고소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아이들처럼 대놓고 키들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수면 밑으로 깊이 누른 채 나는 무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마 이런 감정 표현의 차이는 나이와 관계가 있으리라.
우리는 이제 슬퍼도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남의 안 좋은 일을 보고도 웃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사회적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더 어려워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언젠가는 저 나쁜 일이 나에게도 닥칠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서당을 다니는 게 아니다.
서당은, 내가 돈을 내고 다니는 곳이고 회사는 내가 돈을 받으러 다니는 곳이다.
누가 돈을 내느냐가 힘을 결정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래서 배금주의로 흐르기 쉽다.
슬픈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 빠지게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서양화에 대한 호감이 훨씬 더 컸다.
그에 비해서 동양화는 입체적인 느낌 없이 밋밋하고 평면적인 것이 왠지 모르게 열등하게 보였다.
서양인에 비해서 능력이 부족한 건가. 매력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차츰 그 밋밋한 것이, 그 평면의 느낌이 말할 수 없는 깊이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겨운 화가는 당연히 김홍도였다. 그의 그림은 자유로웠다.
풍속화를 주로 접했기에 더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씨름도 그렇고 서당도 그렇고 그의 그림은 분위기를 절묘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현장성이 뛰어나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바로 그 현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다.
우상단 훈장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양 옆으로 열린 원형의 구도로 자리하고 있다.
훈장 선생의 책상 앞으로는 회초리가 바닥에 있고 그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것인지 아이는 눈물을 훔치면서 대님을 메고 있다.
숙제를 안 했을까? 서책을 안 가지고 온 것일까? 울고 있는 아이의 눈썹이 여덟 팔자로 쳐진 것이 가슴 아프다. 아이의 뒤로 있는 책은 누구의 책일까? 아이의 것인지 아니면 훈장님이 화가 나서 던져버린 훈장의 책인지 사뭇 궁금하다.
구경꾼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다.
입을 헤벌리고 웃거나 예를 갖추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
이렇게 열외 없이 모두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가 잘못을 하긴 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혹은 우리 회사의 그 밉상 사업부처럼 다른 아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을 수도.)
아이들 본인들은 혼날 일이 없을 것처럼 좋아하고 있다.
게다가 부러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울고 있는 아이를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이 모두 주목해서 보면서 웃고 있다. 이런 천진난만함이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냥 지금 이 현상에 집중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단순함은 어쩌면 이렇게 유쾌할까? 구경꾼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웃음이 난다.
하지만 훈장의 표정은 역시 똥 씹은 표정이다.
심기가 편치 않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지만 눈썹을 여덟 팔자로 늘어뜨린 것은 매 맞은 아이와 같다.
때리는 어른과 매 맞은 아이의 심정은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 맞아서 슬프고 혼내서 아프다.
훈장의 으쓱 들린 어깨가 왠지 한숨을 쉬기 직전의 올라간 어깨 같다. 저게 언제 속 차려서 사람 노릇을 할꼬. 하늘 천 땅 지를 모르는 것보다도 훈장은 그것이 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야단을 맞는 것, 꾸중을 듣는 것은 학창 시절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듣는 야단이나 꾸중은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는 것보다 아픔이 더 오래간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타를 받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 된다.
자의식이 성장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옳은 일이라는 신념이 강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는지도 모른다.
앞서 얘기한 보고 자리에서 나는 웃지 못하고 가시방석에 앉은 구경꾼이었지만 나라고 왜 야단을 맞는 일이 없었고 꾸중을 듣는 일이 없었겠는가.
“일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왜 제대로 처리를 못해?”
이런 소리를 들으며 서류를 집어던지는 상사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그래서 회사를 옮긴 경험이 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당시 나는 이직을 위해서 바지런히 면접을 다니면서 다시는 그와 상종하지 않으리라, 연을 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다시 그 인간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나 사이에는 그 일말고도 여러 가지 관계가 얽히고설키며 애증과 비슷한 것이 수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을 하지 않으니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에서는 불편할 일도 없다. 인생은, 김홍도의 그림처럼 평면적인 사건의 나열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은 나와 같지 않다.
나를 낳아준 부모와도 얼마나 싸우나. 같을 수가 없다. 한 가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100인 100색이다.
직장 생활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나이에 꾸중을 듣는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꾸중을 듣는 일이 없을 수도 없다.
그래서 소망해본다.
나를 혼낸 그 선배도 내 등 뒤에서는 훈장처럼 눈썹을 여덟 팔자로 늘어뜨리고 있었기를.
당신을 혼낸 상사가 구경꾼처럼 웃고 있다고? 그럼 당장 그만둬라, 그 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