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에게 고함-정도에 어긋나지 않게 절제하기

저울을 다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 1664년

by 루시

누가 블라인드에 글을 올리지 않을까 숨죽여 지켜봤다. 아니 나는 블라인드 앱을 깔지 않았으니 그런 소식이 들려오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KPI(Key Performance Index) 작성 양식을 여는 순간, 나는 기함을 토했다.

‘이거 진짜 뭐 하자는 거야?’

내 눈에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인 것들이 장황하게 몇 개의 시트에 나뉘어 펼쳐져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아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에 울컥 부아가 났다.

KPI 정교화. 말은 참 좋다. 내가 어떤 것을 달성해야 일을 잘했다고 평가받을 것인가.

물론 중요하다. 회사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그런 조직을 관리하려면 성과에 대한 기준과 그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이유로 쓸데없는 행정적인 업무가 늘어나는 것에 있다. 사실 기본적으로 KPI 항목을 3~4개 작성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핵심 지표라고 할만한 것을 1~2개 설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다를 테니 적어도 항목의 개수는 Free style로 남겨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내가 받아 든 작성해야 할 KPI 양식에는 개미집에 개미가 몰려들 듯이, 작성할 것이 빼곡했다.

도대체 왜?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IMG_4322.JPG 한 숨이 그냥 푸욱 쉬어지는 시추에이션?

많은 항목과 복잡성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단순하고 항목이 적을수록 구성원 각각에게 전달되는 임팩트는 강해진다. 이런 건 사실 여러 성공 기업의 DNA를 분석한 책을 읽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인데, 아니 인간인 나 자신을 되돌아봐도 바로 답이 나오는 쉬운 문제인데 왜 인사팀에서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는지,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양식’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Bold 하게 올해 나는 이것으로 평가를 받겠다, 그리고 그 지표는 이것을 삼겠다. 어쩌면 단 두 줄이면 끝날 얘기가 엑셀 시트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인사팀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다고 느꼈다.

게다가 ‘숫자로 산출할 수 없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절대 명제 앞에서 스탭 부서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스탭 부서의 성과를 숫자로 산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컨설팅 주제 아닐까요?) 단순히 ‘무엇을 몇 회 했다’와 같은 숫자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숫자로 된 KPI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이 역시 한숨이 나오게 하는 요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나 정당한 요구이고 해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장황하게 항목을 나열하며 몇 가지 시트를 작성하게 하는 행태는 참을 수가 없다.

‘정교화’라는 말은 항목을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용을 늘리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KPI 정교화는 ‘정합성’을 높이라는 말이다. 회사가 그 팀에 요구하는 방향과 핵심 지표의 정합성을 높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매출을 늘리라고 하는데 KPI를 영업이익으로 잡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정교화라는 말이 항목 늘리기로 변질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울분을 토하며 혼자 화를 내고 있다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저울을 다는 여인’을 보았다.

저울을 다는 여인.jpg

어두운 방안, 여인의 앞쪽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인해 여인의 하얀 모자와 하얀 털을 두른 윗도리의 앞섶이 빛난다. 여인은 조용히 고개를 모로 꼬고 저울을 달고 있다.

신중해 보인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진중한 몸짓이다.

배가 봉긋한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어쩌면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편안하게 왼손은 탁자에 얹고 오른손으로 저울을 들고 있다. 탁자에는 진주 목걸이 등 보석이 든 보석함이 보인다. 저울에 그와 같은 귀금속을 올려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저울은 현재 비어 있다.

그녀는 귀중한 귀금속의 가치를 알아보기 전에 저울의 추를 맞추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작업이 나중에 무게를 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므로 숨을 죽이고 저울의 중심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이 ‘기준’을 잡는 작업을 소홀히 하면 귀중한 것의 가치가 왜곡되고 쭉정이의 값어치가 터무니없이 높이 매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준을 잡는 그녀의 움직임은 조용하면서도 진중하고 단호하게 느껴진다.

정도(正道)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움직임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란스럽지 않고 정제되어 있는 분위기. 저울을 다는 여인만큼 절제미가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은 없을 듯하다. 저렇게 신중을 기해서 어떤 것의 값어치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신뢰가 간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가치로 인정해줄 것 같은 사람.

하지만 저 저울을 가진 여인이 끊임없이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 이건 저렇고 저건 저렇고 수다를 떨면서 손이 움직이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건의 무게를 달려고 하면 누구라도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 여자의 가치 평가를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곳으로 달려가서 다시 한번 ‘무게’를 달아볼 것만 같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정도(程度)’라는 것이 있다. 너무 과하지 않게 적절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예술’의 수준에 이를 만큼 수준 높은 테크닉이기도 하다. 그녀는 모든 것이 적절하다. 몸의 균형도 저울을 보는 고개의 각도도, 측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호흡 역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는 것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KPI 양식을 만들고 그것을 승인한 사람들은 그 양식을 보고 ‘과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한 사람이 작성을 하고 그 사람보다 많은 사람의 리뷰를 받고 전사에 배포되었을 자료인데 그렇게 과한 ‘양식’이 나오다니. (화가 또다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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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냥 이렇게 작성을 하겠지만 내년에는 제발 좀 단순화한 양식이 나오기를 빈다. 또다시 KPI 양식을 보고 화를 내거나 한숨을 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정도를 지킨 KPI 양식을 받아보며 성과의 기준을 최대한 공정하게 지표화 하고자 했던 인사팀의 노력에 저울든 여인을 볼 때처럼 감동을 받을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어디선가 꿈깨라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지만 애써 무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