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좀 움직여 보면 어때?

더딩스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로버트 워커 목사-헨리 레이번,1795

by 루시

아버지는 손으로 뭘 만들거나 운전을 하는 등 육체의 신경을 사용하여 뭔가를 하는 것에 항상 뛰어난 재능을 보이셨다. 사람을 불러서 수도를 고치거나 전기를 고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시면 다음부터는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의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었다. 운전은 급발진이나 급제동이 없는, 타고 있는 사람들이 운전자가 액셀을 밟는지 브레이크를 밟는지 모를 정도의 실력을 갖췄으니 지금 생각해도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운동 신경도 좋아 수영을 배우지 않았어도 수영을 했고 우리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치신 것으로 봐, 스케이트도 타실 줄 알았던 것 같다.(그렇겠지?)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는 서울에 스케이트장이 거의 없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태릉선수촌 정도? 그래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저기 경기 북부의 어느 논두렁에 임시로 세워진 스케이트장인 경우가 많았다. 나의 첫 스케이트 수업도 그 논두렁의 스케이트장에서 이뤄졌다.

아빠 차를 타고 갈 때에는 마냥 신났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펼쳐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드라이브 가는 건 항상 즐거우니까. 시련은 논두렁 스케이트장에 도착했을 때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아버지가 빌려온 ‘롱’ 스케이트를 신었다.

왜 ‘롱’이었을까?

여자애들은 항상 피겨 스케이트를 타던데 아버지는 당연히 ‘롱’으로 우리를 교육할 생각이었다. 아버지 눈에 피겨는 어쩌면 ‘스포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운동 신경을 타고나지 못했던 나는 도저히 그 ‘롱’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다. 마치 책받침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는 거지? 얼음을 지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속도가 난다고? 난 다리가 후들거리고 기본자세도 익히지 못했다.

날은 춥다. 당연하다. 논두렁이 꽝꽝 얼 정도니까.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추위는 점점 더 내 몸을 굳게 만들었다. 언니와 동생은 어떻게 탔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운동신경이 없는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아주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질타했다.

“그게 그렇게 안 되냐?”

네, 진짜 안 되어요.

대답은 못했지만 나 역시 불만으로 입이 나왔고 언니와 동생은 잘 타는데 혼자만 지진아가 되어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버지는 빌린 스케이트를 바로 반납하러 갔고 나는 논두렁에서 책받침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롱 스케이트를 동생이 잘 타는 모습을 너무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반납하고 온 아버지의 손에 이번에는 ‘피겨’ 스케이트가 들려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건 어린 나에게도 문화적 충격이었다. 롱 스케이트가 책받침이었다면 이건 나막신을 신고 있는 것처럼 안정적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편한 걸 놔두고 굳이 나에게 ‘롱’을?’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 역시 나를 엄청 원망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쟤는 왜 가르쳐 주는 데도 롱을 못 타지?’

스케이트-스코티시내셔널갤러리.jpg

이 그림을 보고 나는 그 추억의 논두렁에 서서 스케이트를 잘 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림의 배경이 아이스링크가 아니라 얼어붙은 호수라는 것이 나를 추억으로 소환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검은 모자에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로버트 워커’ 목사가 멋지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그가 신은 것은 ‘롱’ 스케이트일까? 요즘 피겨 스케이트처럼 신발이 발목 위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롱 스케이트일 것으로 추정하나, 때는 1800년도 되기 전이니까 피겨 스케이트일 수도 있다. 스케이트날을 봐도 알 수는 있는데 온라인 상으로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상당히 편안해 보인다.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 팔짱을 낀 채로 무심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롱을 타면서 이렇게 무념무상의 얼굴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실력은 아마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와 견줄 수 있지 않을까.

목사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스케이트를 타러 나왔을까? 뭔가 속이 답답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근처 더딩스턴 호수에서 바람이나 쐬면서 스케이트를 지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혼자 터덜터덜 스케이트를 어깨에 메고 목사관 근처의 더딩스턴 호수에 나온 것은 아닐까.

며칠 전에 눈이 왔는지 먼 산도 회색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얼음을 지치러 나온 오늘도 하늘은 눈이 흩날릴 듯 잔뜩 찌푸려 있다. 그가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더딩스턴 호수의 얼음 역시 딴딴해 보이는 회색이다.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회색톤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나는 왠지 그것이 목사님의 답답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우리 왜 그렇잖아요.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면 좀 풀리지 않나요?

목사님도 교구의 신자들과 어떤 트러블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곧 눈이 흩날릴 것 같은 궂은 날씨에도,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호수에 나와 바람을 일부러 온몸으로 맞으면서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시달리지만 이렇게 멋진 호수와 시원한 바람을 주신 절대자인 신에게 감사드리며 어떻게 해야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인지를, 트러블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묵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나도 슬슬 몸을 움직여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 주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운동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수영을 할 때 느끼는 ‘중력’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감각도, 요가를 할 때 느끼는 내 몸과 영혼이 함께 대화하는 느낌도,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벅찬 호흡의 뿌듯함도 다른 무엇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특히 앉아서 머리 쓰는 사람들, 사무직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면 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져서 두뇌활동에도 자극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오늘 간 병원에서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의 나쁜 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허리에도 안 좋지만 무릎에도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니 한 5분 정도라도 복도나 통로를 걸어주는 운동이 좋다고 하네요.)

더딩스턴 호수가 경기도 북부의 어느 논두렁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를 준 반가운 그림이었다. 눈물이 날 만큼 아버지에게 혼나면서 배웠던 스케이팅의 기억도 지나고 나니 그립기만 하다. 이번 겨울에는 실내 아이스링크가 아닌 야외 아이스장에서 한번 얼음을 지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쭤보니 우리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칠 당시, 당신 역시 당연히 타본 적이 없었다는 기가 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고 '저렇게 타면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우리를 데리고 나섰던 거라고. 역시,,, 우리 아버지는 시대를 앞서간 트렌드 리더였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세상이 이제 막 열리고 있는데 수 십 년 전에 우리를 상대로 그런 시대를 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