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생각해보면 세상이 넓은 것을 처음 느낀 때는 대학에 입학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도 지역 기반의 학교를 다니다 보니 그랬을까.
우물은 좁았고 누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어서 별반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시험을 보고 전국 단위의 등수가 나와서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대학교 입학 후 느꼈던 그 문화적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건 뭐 중〮고등학교 때 ‘뜨르르’하지 않았던 애가 없었다. 반장 안 해본 애가 없고 회장 안 해본 애가 없었다.
너도? 쟤도??
그 때 절감했다. 대학에 왜 가라고 했는지.
세상은 잘난 사람들이 미어 터지는 곳이고 가만히 있다가는 내 권리고 뭐고 그냥 날아가는 살벌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주목 받는 것을 싫어하고 나서는 것 또한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당연히 비주류였다.
학과 방에 죽치고 앉아서 갖은 참견을 하며 선후배간의 네트워크를 넓히는 것도, 학과 소모임을 몇 개씩 억척스럽게 해내며 선배와 눈도장을 찍는 것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체질적으로 알러지가 있는 것처럼 그런 활동들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학과 방을 가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슬쩍 자리를 떴다.
학과 소모임은 포기했다. 술자리? 뒷풀이? 극혐이었다.
수업만 간신히 듣고 체육관에 가서 좋아하는 배구부를 숨죽여 관찰하거나(그 때 운동복 상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훌러덩 벗어 던지던 그리스 조각몸매들은 잘 살고 있을까?)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이 빼곡히 꽂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마음 편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곳도 도서관의 미술서가에서였다. 총천연색의 다양한 미술책과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라는 경이로움에 압도당해 멍하니 창 밖을 보기도 했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졸업 전에 취직이 결정되었으니 행운이었다.
나는 당연히 ‘신분 세탁’을 시도했다.
비주류가 아닌 주류의 삶을 살기 위해서.
술자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 받아들이고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매진했다.
자정을 넘기는 것도 불사하고 술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흥청망청 떠들어댔다.
신입의 패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뾰족하게 모가 나 있던 나의 성격도 물에 씻겨 둥글게 변해가는 해변의 돌들처럼 둥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주류에 편입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비주류에서 나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회사는 대학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대학은 배우는 곳, 회사는 일하는 곳.
그 어떤 곳보다도 능력과 실적이 우선되는 곳이다. 목표가 있고 구성원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흡사 경주마처럼 전력 질주한다.
물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은 회사 기둥에만 잘 숨어도 월급이 나온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지만
내가 다닌 직장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주로 단기간이었다. 길어도 2달을 넘기지 않았다. 그 숨막히는 경쟁 비딩은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경쟁 각을 세우고 전략을 만들어내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지금 하는 프로젝트’였다.
비주류의 피가 도도히 흐르는 나는, 당연하게도 좀 독특한 측면이 있었다. 개성이 강하다고 할까.
그래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도 곧잘 내곤 했다. ‘다름’이 미덕 중의 하나인 인더스트리이니 그나마 나와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막히는 순간이 다가온다. 스스로 갈피를 찾지 못하고 생각은 자꾸 제자리를 맴돌고 현재 내가 처한 난관을 헤쳐나갈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못할 때, 그럴 때면 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생각난다.
처음 그의 그림을 봤을 때 나는 당연히 몰라봤다.
어떤 점을, 그의 그림의 어떤 점이 그렇게 뛰어난 것일까?
다른 화가들의 화풍과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과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다르다는 것에만 머무를 뿐 어디에서 뛰어나다고 점수를 줄 수 있을지 인색한 감독관처럼 나는 팔짱을 끼고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고흐의 해바라기며 밤의 카페테라스며 아를의 마을 풍경,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다가, 보다가, 보다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알게 되었다. 뭐가 뛰어난 것인지를.
고흐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잘 그리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높았지만 살아 생전 그의 재능은 오늘날과 같은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나는 고흐가 상당히 답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인가를 잘 하고자 하는 열망은 높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듯이.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 그 꿈틀거림이, 누구보다도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캔버스를 뚫고 나올 것처럼 분출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고흐만큼 그림 뒤에 숨겨진 본인의 마음을, 심상을, 느낌을 강렬하게 감상자에게 전달한 화가는 없었다. 그것이 그가 뛰어난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그 역시 불면증이었을 거라고.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거라고. 일이 안 풀릴 때 우리가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특히 요즘의 나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길없는 길을 걷는 것 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환상적이면서 불온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짙푸른 색과 노란색의 콘트라스트는 본적이 없다.
달과 별만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짙은 밤하늘 아래 펼쳐진 마을의 몇몇 집 창문에도 고흐처럼, 나처럼 잠을 못 이루는 이들의 불빛도 낮게 빛나고 있다. 스타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스타가 될 날을 꿈꾸며 우리는 잠을 못 이룬다. '내가 빛나는 밤'을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룬다.
짙은 밤하늘 역시 어떤 기운을 담아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 거리고 있다.
세상은 불안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천계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러리라는 것을 그의 붓끝이 말해준다.
그러니 쉬이 지치지도, 쉬이 눈을 감지도, 쉬이 절망하지도 말아라.....
별이 빛나는 밤을 저다지도 아름다우면서도 독창적으로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이렇게 그리는 것이 최선일까? 이게 맞는 방향일까?’ 라는 물음표가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깊은 애착을 느낀다.
주변의 평가와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도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다. 한때 나도 자존감과 자신감이 그림 좌측의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하늘을 찔렀었는데.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어디 숨었는지 잘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건가. 이렇게 그냥 끝나는 건가 싶은 자괴감과 씨름을 하고 있자니 문득 그의 그림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두꺼운 붓터치는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붓칠에 붓칠을 거듭하면서 나온 것이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독특한 스타일은 어떤 유파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던 그의 스타일을 스스로 의심하면서 노력한 흔적일 거라 생각한다.
회사 업무로 역대급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나를 스스로 다독여 본다.
달무리도, 별무리도 저렇게 빛을 발하고 있는 밤이라면 인생이 안온한 사람도 쉬 잠들기는 어려울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