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초옥도-전기, 19세기 중엽
광양의 매화마을을 찾은 것은 요즘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보다 매화가 더 많을 때라고 표현해야 할까.
알싸한 겨울바람의 끝자락을 느끼며 외투의 깃을 여몄지만(그래서 꽃이 피었을까 긴가민가 했지만)
매화마을에 도착해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봄 중의 봄, ‘꽃잔치’가 한창이었다.
가본 적 없는 ‘무릉도원’의 느낌? 아니 ‘무릉매원’이라고 해야 하나.
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에서 점점이 돋아난 하얀 매화의 고고한 매력은
마치 꿈결을 걷는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꿈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걷고 또 걸어도 꿈길 역시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직은 겨울의 한기가 서린 땅, 초목이 이제 겨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는 가운데
우등생처럼 먼저 하얀 꽃을 틔워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매화를 보고
사군자의 명예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납득하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 아름다움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포착한 그림을 알게 되었다.
전기의 매화초옥도. 와 이런 천재를 봤나, 싶었다.
산속에 파묻힌 조그마한 집 한 채, 그리고 화폭을 덮을 것처럼 표현된 만개한 매화.
화폭의 풍경 역시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았는지 산의 곳곳에 흰 눈이 묻어 있다.
환상적이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봤던 매화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매화에 둘러싸인 집주인이. 집주인은 그 수많은 매화를 혼자 독점하고 있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였다.
요즘은 매화보다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주인은 홀로 매화 감상을 하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고개를 들고 코로 매화향을 한껏 흡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그시 뜬 눈으로는 눈 앞에 펼쳐진 절경을 흡족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유유자적하는 삶이라니!(혹시 그도 자연인??)
저 멀리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윤택, 아니 친구는 나무 막대기에 가벼운 봇짐을 지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친구 잘 둔 덕에 호강할 그 역시 부럽다.
나의 꿈 역시 지인 중 한 명이 자연 속에 겉은 한옥, 속은 양옥인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언젠가 지인이 지나가는 말로 본인이 집을 짓게 되면 벚나무 한그루를 선물하라고 당당히 요구하여 흠칫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사실 묘목은 얼마 안 할 텐데 그때 하필이면 수령이 수 십 년은 되어 보이는 위풍당당한 벚나무를 보고 있어서 상당히 '쫄았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네. 여하튼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애당초 남의 덕을 보려는 심보가 도둑의 심보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히 저 빨간 도포의 사나이 봇짐 속에도 친구에게 신세를 지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각종 먹을 것과 자연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도시의 신문물이 오롯이 선물로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걸음이 뛸 듯이 바쁜 것처럼 느껴진다.
빨리 가서 친구랑 나눌 매화의 정취와 오랜만의 회포. 세상에 그처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서인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그래서 서인국 교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snapshot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설명한다.
“오! 자네 왔는가?”
초록 선비가 반색을 하며 빨간 선비를 맞이한다.
“자네 혼자 신선놀음하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 급히 왔지.”
손님을 방석을 내어 자리에 앉히고 초록 선비는 술상을 보러 나간다. 아마, 매화주겠지?
그 사이 빨간 선비는 안주는 내가 챙겨 왔으니 술만 챙겨 오라고 부엌에 나간 집주인에게 소리친다.
바람에 풍겨오는 매화향기에 벌써 빨간 선비는 얼굴에 취기가 올랐다.
술상을 마주하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초록 선비와 빨간 선비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서인국 교수도 인정할 행복의 순간이 아닐까.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을 통해서 찾아보니 이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적힌 “亦梅仁兄草屋笛中”이라는 글귀가 초옥의 주인인 역매(亦梅) 오경석과 그를 찾아가는 화가(전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전기는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으며 김정희 파에서도 사의(寫意)적인 문인화의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한 화가로 평가된다고 하네요? 30세에 요절했다니 상당히 안타깝다. 설명에 따르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집주인은 피리를 불고 있고 전기는 거문고를 메고 있다니 풍류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아 괴나리봇짐이 아니라 거문고였구나.
또한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매화서옥(梅花書屋)’ 또는 ‘매화초옥(梅花草屋)’이라는 제목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본래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유명한 송대의 임포(林逋)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한다.
임포? 화정선생(和靖先生)이라는 시호로 더 알려진 임포는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아 벼슬과 가족을 뒤로한 채 저장성 항저우 서호의 고산에 초옥을 지어 매화를 심어 놓고 20년 동안 은거하면서 마을에 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어? 동지네?) 학과 사슴을 기르며(개와 고양이가 아닌 학과 사슴이라니 뭐랄까 있어빌리티 끝판왕 같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사러 보내고, 손님이 오면 학이 하늘로 날아올라 알렸다고 한다.(어쩐지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 같지 않나요? 신화든 현실이든 운치 '쩌는 건' 부정할 수 없네요.)
집 주변에는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으며,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은 사람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임포의 고사(故事)에 따라 매화는 은둔 처사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저장성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아름답다고 이름난 도시다. 물론 내 개인 취향은 항저우보다는 쑤저우였으나 임포가 초옥을 지어놓은 곳은 분명히 쑤저우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이다. 자연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벼슬과 가족도 다 버리고 홀로 도피했을까. 기개가 느껴진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노선을 확실히 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면모가 부럽다. 다시 저장성에 가봐야겠다.(어라? 왜 얘기가 또 여행으로 번져?)
임포도 그렇고 전기도 그렇고 상당한 풍류가객이었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티브를 후세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다니. 덕분에 광양에 가지 않고도 매화에 취하는 호사를 누린다.
회사에, 일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조용히 이 그림을 꺼내본다.
초옥의 주인이 되어 눈으로 코로 온몸으로 매화에 취해본다.
사람의 향기가 아닌 자연의 향기에 위로를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