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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Mar 20. 2024

혼자 놀기

- 나는 혼자가 편한데, 아이가 혼자 노는 건 왜 이렇게 불편할까요


2024년 2월, 어린이집 졸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일곱 살에게 주말은 신나는 날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어린이집 급식에 나온 김치 반찬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죠. 엄마와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요.  뭘 해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 일곱 살에게 주말은 꿀맛 같은 날입니다.


김진주는 꿀을 빨고 있지만, 함께 놀아야 하는 엄마는 편치 않습니다. 제게 꿀맛 같은 휴식은 인적이 드문 '단골 카페'에서 고르곤졸라 피자랑 커피를 혼자 즐기는 것이죠. 피자를 챙겨줘야 하는 일곱 살과 함께 있는 건 행복하지만 피곤합니다.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지만, 이보다 나은 표현이 없네요. 행복한데 눈물이 흐르는 게 육아죠. 


엄마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 일곱 살은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잠에 취해서 헤롱 댑니다. 침대에서 뒹구르르, 소파에서 뒹구르르. 잠에 취해 있는데도 혼자 있는 건 싫어해요. 방이든 거실이든 같은 공간에 머물고 싶어 하죠.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뭔가를 하자고 합니다. 티니핑 도안을 출력해서 '누가 색칠을 더 멋있게 하나' 대결하고, '더하기' 숫자 퀴즈를 냅니다. 인형 숨바꼭질을 반복하고, 규칙이 뭔지도 모르는 포켓몬카드 대결을 하죠. 시간이 지나면 슬금슬금 지쳐요. 브런치 카페에 가서 멍 때리고 싶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뒹굴고 싶습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요.


"너 친구랑 놀면 안 되겠니?"

"친구 없는데?"

"엄마가 전화해 줄까? 효원이네 엄마 번호 아는데?"

"아~니!"

"그럼 너 혼자 놀 거야?"

"아~니! 엄마랑 놀 거야."

"엄마는 혼자 놀고 싶은데?"

"그럼 나도 혼자 놀래."


얏호. 그렇게 해서 저는 소파에서 담요를 칭칭 감고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김진주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혼자 인형놀이를 해요. 처음에는 못내 아쉬운 듯 굴더니, 이내 인형놀이에 집중해서 파란애 흉내를 냈다가 빨간애 흉내를 냈다가, 1인 모노드라마처럼 인형놀이를 합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는데 짠합니다. 저렇게 노는 게 재미있는 건지, 그냥 할 수없이 그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참 이상하죠. 나는 혼자 노는 게 좋은데 아이가 혼자 놀면 마음이 짠해요.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한데, 아이가 혼자 노는 건 왜 이렇게 불편할까요? 


결국 또 집니다. 함께 놀자고 러브콜을 보내는 거죠. "우리 그러지 말고 나가서 놀까?" 김진주는 나가기 싫은데 엄마가 말해서 가준다는 듯이 마지못해 말합니다. "그러고 싶어?" 쳇, 아놔, 어이가 없습니다만, "응, 너무 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다. 집라인 타러 가자~" 놀이터에 가고 싶어서 안달 난 엄마가 되어 봅니다.




놀이터에서 노는데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민우와 그의 엄마가 지나갑니다. 가끔 놀이터에서 보던 사이라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요. 물론 저랑 민우 엄마만 인사해요. 김진주는 민우를 흘깃 보더니 다시 혼자 놉니다. 민우 엄마가 말하기를, 오늘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래요. 제가 몰랐다고 하자, 민우 엄마는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어머머머머. 왜 진주 엄마가 단톡방에 없지? 어마마.. 난 그것도 몰랐네.." 미안하고 민망하고 다급하신가 봅니다. 덩달아 민망해집니다. 반 전체가 열 명인데 저만 단톡방에 없다니요. 아이들은 이미 태권도 학원을 같이 다니고, 놀이터에서 만나서 함께 탕후루를 먹으러 다녔다네요. 단톡방의 존재도, 아이들이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건, 우리 김진주가 무리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뭔가 씁쓸하고 걱정스러운 마음. 


"그래, 이렇게 만나서 잘 됐다. 지금 같이 가자. 다들 모여 있어. 진주야, 이모 알지? 민우 엄마잖아. 우리 같이 가자~ 가서 초코바도 먹고, 애들은 디즈니 뭔가 보고 있다던데.." 민우 엄마가 사분거리며 김진주를 꼬십니다. 참 친근감 있고 좋은 분. 그런데도 김진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네만 타네요. 제가 다 민망합니다. 


"그래, 진주야. 우리도 가서 놀자. 거기 가면 아마 포켓몬 푸린도 와 있을걸." 김진주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로 꼬셔보지만 역시나 무응답. 10여분 실랑이 끝에 민우 엄마는 친구네 집으로 향하고, 놀이터에는 김진주와 저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날따라 놀이터가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어요. 단톡방에 미리 초대받지 못한 워킹맘의 한계,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놀이를 거부하는 김진주의 고집, 꼬시기 스킬이 먹히지 않은 것에 대한 좌절, 날은 왜 이리 춥고 바람이 부는지, 심란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쪼개봐야 합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잘게 쪼개서 살펴봐야 합니다. 욱하기 전에, 뭔가를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나눠봐야 해요.


첫 번째 드는 마음은, 엄마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입니다. '나는 왜 단톡방에 없을까. 왜 나만...' 생각해 보니 몇 달 전에 같은 반 엄마에게 주말에 놀러 오라고 초대를 받았습니다. 김진주에게 "갈까?"하고 물었고 "아니"라고 답해서 안 갔죠. 김진주 핑계를 댔지만 사실 저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이었고 낯선 집에 찾아가는 부담을 지면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죠. 이 단톡방은 그때 만들어진 거였습니다. 그날 초대에 응한 사람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톡방. 이제야 알았어요. 나의 거절이 만든 소외라는 걸.

 

이제라도 무리에 섞여야겠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김진주와 둘이 문방구까지 가는 동안, 틈틈이 엄마들 단톡방에서 'ㅋㅋㅋㅋ, ㅎㅎ' 이모티콘을 남발합니다. 무리에 물들어보려는 노력이죠. 늦게나마 소속되려는 몸부림. '계속 소외될까'하는 두려움으로 안 하던 짓을 합니다. 김진주가 킥보드 타는 사진, 문방구에서 노는 사진 등을 올리면서 '진짜 가고 싶은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갈 수 없다고' 마구 설명합니다. "아이고, 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우리 집에 따로 놀러 오세요" 단톡방 엄마들의 화답으로 어느 정도는 마음이 풀립니다. 안도하는 거죠. '내가 소외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두 번째 마음은 김진주에 대한 답답함입니다. 김진주는 변화를 싫어하거든요. 집에 있으면 나가기 싫어하고 나가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죠. 그래서 뭔가를 할 때는 미리 말을 해줍니다. 김진주가 예측하고 마음을 준비하도록 시간을 줍니다. "우리 오늘은 놀이터에서 집라인 타고, 킥보드 타고 문방구까지 가서 장난감 하나 사 오자" 몇 시간 전에 우리가 합의한 계획이죠. 갑작스럽게 친구 집을 가는 건 김진주에게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그걸 압니다만, 이렇게 친구들이 모일 때마다 '친해질 기회'를 날려버리는 게 속상합니다. 김진주의 거절이 언젠가 소외감으로 돌아올까 봐요. 억지로라도 친구집에 데리고 갔어야 했나, 그런 후회마저 듭니다. 아이의 조심스러움을 잘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주려 했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의 적응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고민됩니다.


저희 남편은 어디를 갈 때 김진주에게 물어보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 도서관에 갈 거야. 가야 돼. 가는 거야."하고 말해요. 그럼 김진주는 입이 댓발 나와서 마지못해 끌려가요. 그런데 막상 도서관에 가면 잘 놀아요. 남편은 제게 충고를 하죠. 아이한테 무조건 맞추지 말라고, 그냥 '하자. 해야 돼'라고 말하라고. 이런 차이를 두고 남편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나름의 기준은 있거든요. 아이가 무엇을 선택하든 수용할 수 있을 때에 한해서 묻자, 그게 제 기준입니다. '놀이터 갈래, 친구 집에 갈래?' '도서관 갈래, 그냥 집에 갈래?' '탕후루 먹을래, 붕어빵 먹을래?' 이런 거요. 반드시 정해진 일들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침 9시 반에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 '10시 전에는 자야 해'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을 닦아야 해' 이런 거요.


만약 선택지가 있는 일에도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문법을 적용하면, 아이 마음에는 '선택지에 대한 갈등'이 자랄 틈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민우와 민우 엄마가 '친구 집에 함께 놀러 가자'고 했을 때, 엄마까지 나서서 단체로 꼬시기에 들어갔을 때, 김진주는 고민했을 거예요. 그리고 결정했죠. '안 갈래.' 자신이 거절했기에 소외될 수 있다는 걸, 김진주는 알아야 해요. 본인의 선택이 어떤 결정을 가져오는지. 


"너 친구들 모이는 자리를 계속 빠지면, 너 외톨이된다"고 겁박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렇게해서라도 아이가 미리 알았으면 하는 거죠. 하지만 그건 김진주에게 와닿지 않아요. '화를 내는 엄마, 엄마에게 못마땅한 나'라는 기억만 심어줄 뿐입니다. 


엄마가 쓰는 '너 이거 안 하면 ~ 된다'하는 문법은요, 실은 엄마의 두려움입니다. 김진주가 정말 외톨이가 되서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이죠. 내 아이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살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세상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소외감을 느껴야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 무시를 당해봐야 존중이라는 가치를 알죠. 그러니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이가 상처를 입어도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단단한 '뒷배'입니다. 뒷배가 든든하면 휘청해도 주저앉지는 않으니까요. 쉽지 않지만, 속으로 되내입니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상처받을 수 있다. 상처받아도 부모라는 '뒷배'가 있으면 아주 나빠지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자. 그게 내 할 일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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