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민 Aug 03. 2020

꾀병?!

엄마와 아이 응급실 방문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타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확진이 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천만다행으로 아이들은 무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침이면 열을 재보고, 기침을 하는지 콧물이 나는지 목이 아픈지를 확인한다.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학교를 향한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만,

2학년을 맞아 준비해오라던 오카리나를 아직 불지 못하고 있고,

지난겨울부터 하고 싶어하던 경. 도.(경찰이 도둑잡기, 일종의 술래잡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신체 활동을 양껏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6월 중반쯤 들어서자 자신의 놀거리를

궁리하기 시작했고,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낸 것이 '딱지'이다.

지금 내 옆에 색종이로 접은 형형색색의 60개의 딱지가 정리되지 않은 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양껏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는지 교실에서 딱지 치기를

허용하셨다고 한다. 그 덕에 우리 아이는 아침 6시 30분이면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세수를 하고, 입을 옷을 골라놓고, 아침이 준비되기 전까지 딱지 치기를 연습한다.


딱지 치기를 볼 때마다 혼신의 힘을 어깨에 모아놓고, 있는 힘껏 내려쳐댄다.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린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왜 저러는 가 싶다.

저러다 어깨 빠지는 거 아닐까, 어깨가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를 생각해내고 있다.

  "엄마, 멸치 좀 많이 줘."

  "왜??"

  "멸치를 많이 먹어서 어깨 쪽으로 보내야겠어. 그래야 어깨 안 빠지고 딱지를 치지."

  "뭐?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차리리 어깨에 멸치를 꽂아 놓고 해."



지난 화요일 아침도 여느 때와 같았다. 아이는 일어나서 씻고, 딱지에 열중하다가

밥 먹으라는 소리를 다섯 번 정도 외치고, 성질을 내니 식탁으로 왔다.  

딱지를 그리 열심히 치다 오더니 한다는 소리,

  "아, 배가 아플라고 하네."

  "......."

아이는 말이 쏙 들어가고 밥을 먹고 학교를 갔다. 배가 아플라고 한다는 말은 귀담아듣지 않고,

밥을 먹기 싫어서 그러겠거니 생각했다.



오후 1시쯤,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열이 난다고 했다.

열이 난다니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 아닐까 라는 겁!

그 무섭다는 코로나 염려증이 발동됐다.

  '7월에 담양 갔다 와서 그런가? 2주도 훨씬 지났는 데 이제야?'

  '코로나 증상이 뭐였더라?'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별 진료소를 가야 하는지

그냥 일반 소아과를 가면 되는지 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일단 열이 나고, 호흡기 증상이 없으니 소아과를 가기로 결정했다.




아이를 보니 열이 나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열이 났어? 머리가 아팠어?"

  "응 조금. 근데 오늘도 딱지 쳐서 내가 땄어."

열이 난다는 녀석이 또 딱지 이야기. 성질이 나지만 참았다.




소아과에서는 일종의 장염 초기라고 했다. 장 운동 관련 약을 줄 테니 먹여보라고 했다.

열이 나기 전에 설사를 한 번 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 같았다.

장염 약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째 먹였다. 열은 39.8도까지 치솟고, 38도 아래로

내려올 기미가 없다. 기세 좋게 딱지를 쳐 대던 아이는 열이 나자 한풀 꺾였다.

 


열이 오를 때쯤, 오한이 있으면 소파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고, 끙끙 댔다.

이렇게 열이 나본 적이 없어 아이도 나도 당황했다.

약이 지 않는 것 같아 병원을 바꿔봤고, 약을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멀스멀 코로나가 떠오른다.

이제라도 선별 진료소를 가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했다. 혹시나 해서 밖을 나가지 않고

집에만 머물렀다. 고열만 있을 뿐 호흡기 증상이 없으니 검사를 받을 수 없다.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열만 나던 아이는, 이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설사가 시작되었다. 설사가 시작되어 아이는 힘들어했지만

나는 코로나에서 정말 빗겨 난 것 같아 안도했다.

  "엄마, 배가 아파."

문제는 아이가 배를 많이 아파했고,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맹장염이 떠올랐다. 맹장염이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 비슷한 양상이 보였기 때문에

코로나에서 맹장염에 생각이 꽂혀버렸다.

  '안 되겠다. 응급실을 가야겠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가기로 결정했다.

응급실을 가기 전 재빠르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냈고, 몇 가지를 작성했다.


방문하면 먼저 인턴이 문진을 시작할 때 필요한 것들을 적었다.

문진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게 관건이다. 이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증상 최초 발생 일자와 주 증상,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을 적어갔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의 경우,

최초 발생 일자 : 2020.7.28. 오후 1시 열 38.5도

주 증상 : 고열(39.8도까지 오름), 설사(금요일 6회)

복용한 약 : 포리부틴, 세토펜, 비오 풀

이렇게 적어가고, 이것을 보여주면서 문진을 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팁으로 외상(손을 깊게 베이거나 찢어지거나)으로 응급실을 방문할 경우에는

원인 물건을 사진을 찍어가거나 가지고 가는 것이 치료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어

치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다.




아이의 고열이 지속된 기간이 길고, 설사 횟수가 많아

수액을 맞고, 몇 가지 기본검사를 하기로 했다. X-ray, 혈액검사.

맹장염이 맞다면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높은 상태가 나오기 때문에 확인해야 했다.



난생처음 맞아보는 주사에도 아이는 기력이 없는지 나부대지도 않는다.

수액을 맞으며 아이는 잠들었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다.

배가 아프다는 얘기를 놓치지 말고, 귀담아들을 것을 후회가 밀려온다.

늘 건강했기 때문에 며칠 앓고 말겠지 라고 쉽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잠들었다가도 화장실을 가겠다며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서 언제 나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밥 먹기 싫어서 하는 소리로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간간히 열을 재러 왔지만 열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어려서 주사로 해열제를 주지 않다고 하여, 먹는 해열제를 다시 먹였다.

검사 결과는 언제쯤 나오는지, 설마 맹장염으로 수술받게 되면 어쩌지 라는 겁이 났다.




수액을 맞은 지 2시간쯤 지나자 소아과 전문의가 왔다.

  "혈액검사도, X-ray도 정상이네요. 장염입니다."

다행히 검사는 정상이라고 하니, 열이 떨어지면 퇴원을 하겠다고 했다. 열이 과연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기대해보기로 했다.



어느덧 밤 11시 30분.

오늘은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겠구나 라고 단념했다.

보호자로 밤을 새워 본 적이 없어 급 피로감이 몰려왔다.

  "엄마 나 더워."

아이는 계속 열이 나서 춥다고 하더니 이제 덥다고 한다. 혹시 열이 떨어지려나 하고

이불을 걷어 주었다.

  "엄마, 나 야구 하이라이트 보면 안 돼?"

이 와중에 야구 중계를 챙겨보겠다는 말에 천불이 났으나 심심하기도 하겠다 싶어 틀어주었다.

두 팀의 하이라이트를 챙겨보면서 속 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과연 열이 나고 설사를 해대는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얼마나 열심히 봤는지 땀이 조금 났다.

땀이네? 열 떨어진 거 아냐?

때마침 간호사가 열을 확인하러 왔다. 37.3도!




수액 때문인지, 먹은 해열제 때문인지, 야구 하이라이트 때문이지,

여하튼 아이는 열이 떨어져 약을 받아서 퇴원했다.

다시 열이 나면 입원할 것을 챙겨서 오라는 담당의사의 당부를 듣고 냉큼 집으로 왔다.

다행히도 주말 내내  더 이상 열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는 지속되었다.



"엄마 나 애슐리 가고 싶어."

"엄마 나 오므라이스 먹고 싶어."

"아니다. 다 나으면 떡볶이랑 어묵 먹고 싶어."

"아~ 카레밥 먹고 싶다."




아이는 주말 동안 열도, 설사도 완화되어 며칠 쉬었던 학교를 가게 되었다.

건강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었고,

건강과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원인이 무엇이었기에 장염에 걸렸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음식을 추정해봐도 아이 혼자서만 장염을 앓았으니 그것 참 미스터리 하다.






작가의 이전글 금융 문맹자=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