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났다. 고작 6일 일정의 출장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남편이 집을 비운 적이 처음이다. 곧 10주년이 돌아오는 우리의 결혼생활 동안 떠나는 건 항상 나였다. 남편은 말 그대로 붙박이 장처럼 학교에, 집에 메어있었다. 그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나는 나와 똑 닮은 아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부터 들로, 산으로, 바다로, 호수로 매번 떠돌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는 낯설었다. 오늘 저녁에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 생각하니 이 기분이 뭔지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내가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게 떠돌아다니는 동안은 알 수 없었던 남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왜 나만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정 부리기 일쑤였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인생이라며 푸념처럼 던지던 가시 돋친 말들이 일상이었다.
남은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그의 기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텅 빈 집에 때로는 하기 싫은 공부를 홀로 남아 계속해야 하는 남편의 기분은 어땠을까? 하고 싶은 공부 하는데 앓는 소리 하지 말라는 아내에게 이런 기분을 말할 수 있었을까? 말없이 남편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떠나보낸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중섭의 소망
지난 화요일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 인 이중섭 특별전에 다녀왔다. 흔히 알고 있는 이중섭의 작품과는 다른 좀 더 개인적인 그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 전시회였다. 작품들은 대체로 그가 아내와 연애 시절에 그렸던 엽서와 한국전쟁 통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그림들이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될 만큼 조예가 없다. 그럼에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엽서에 그린 그림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아내와 생때같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고 그린 그림에서는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철철 흘러넘치는 그리움을. 등장인물들은 대부분이 아이들이었고 가족이라는 제목의 그림들이 많았다. 그림 속의 아이들과 가족들은 서로 한데 엉켜있거나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담담한 표정과 잔잔한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느낌이었을까. 아내에게 부친 편지에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있었다.
전시를 보고 와서 그리고 남편이 떠나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이 이질감과 부러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생각하고 뉘우쳤다. 항상 옆에 있다는 이유로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나의 힘듦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개인적인 소망과 안위를 먼저 생각한 나머지 사랑스러운 아이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지 못한 것 등등. 남편을 만나 평생 함께하기를 약속하고 처음 아이를 만나 행복하기만 하던 때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순수했던 마음이 꽤 빛바래 있었구나.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으로 가꿔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