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재촉하는 경고와 같은 안내문이 울린다. 그렇지. 오늘은 글을 써야지. 항상 마음은 굴뚝같은데. 오전 내내 끙끙대다 더 기분이 가라앉기 전에 노트북과 지갑, 핸드폰을 챙겨 나온다. 나오려다 보니 생각이 났다. 도서관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예약도서가 있다. 동선을 수정한다. 책을 찾고 커피숍에 가서 내게 남은 시간의 절반은 책을 읽고 절반은 글을 쓰자.
초행길이 아님에도 길을 나서서 도서관 방향을 찾는데 뜸을 들인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네이버 지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이 길이 맞나 아닌가? 확신이 없어질 때마다 기억에 남는 건물들이 보인다. 이렇게 오래 걸어야 했나? 하는 순간 눈앞에 도서관이 보인다. 예약 도서를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하고 회원증 바코드를 찍는다.
"예약된 도서가 없으신대요?"
찾으러 가야지. 찾으러 가야지. 하루이틀 미뤘더니 예약대기일이 지나버렸다. 찬바람을 뚫고 20분을 걸어왔는데 이 허망한 기분을 어찌할꼬. 다행히 다음 예약자가 없었고 찾는 사람이 없었는지내 예약도서는 보관기한을 지나 책장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가라앉은 기분을 더 망치지 않을 수 있어서. 이제와 생각해 보니 꼭 그 책이 아니 더라도 다른 읽고 싶었던 책을 대신 빌려나왔으면 될 일인데.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질 않는다.
첫 번째 해야 할일을 끝내고 두 번째 해야 할 일을 실천한다. 커피숍으로 향한다. 먹고 싶었던 메뉴인 토마토바질크림치즈 베이글과 따끈한 드립커피를 마셔야지. 이번에도 살짝 삐걱댄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메뉴판에 없다. 아마도 가을 한정메뉴였나. 당황하지 않고 대파베이컨크림치즈 베이글을 선택한다. 괜찮다. 아침도 제대로 안 먹은 나에겐 토마토 바질이던 대파베이컨이던 상관없이 맛있을 테니까.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정확히 1시간 30분이 남아있다. 30분은 빌려온 책을 읽고 남은 1시간은 글을 써보자.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고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 커피를 한 모금 호록거린다. 책장을 넘기며 30분이 흐른다. 지난 1년간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다. 별거 아닌 오후의 독서가 나에게는 은근히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다행이다.
이제 컴퓨터를 꺼낸다. 커피숍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브런치에 접속한다. 오랜만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보다 핸드폰 노트를 더 이용했기에 브런치의 메인화면이 낯설다. 개의치 않고 써 내려간다. 그저 내가 조금 민망할 뿐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1시간 동안 꽤 많은 글을 썼다. 글 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이 글이 발행할 만한 글인가?이다. 정신없이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어보고 고칠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이런 글을 써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내 마음속에 사는 깐깐한 평론가가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 '저장' 버튼을 누르고 컴퓨터를 닫는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이 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은 발행의 기쁨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서랍 속에 오래 자리 잡다가 그대로 휴지통으로 들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