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용 Oct 14. 2024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완벽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쳤었다. 시험 한 문제라도 틀리면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곤 했고, 악기나 발레 등 하는 것도 많았는데 이런 모든 내가 하는 일들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길러졌다. 모 아니면 도라는 인식이 생겼고, 일명 “black and white thinking”이라고 하는, 흑백 논리적인 사고를 띄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등을 할 수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고 A+ 점수를 받지 못하면 나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약속을 취소해 버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인가.

    나는 뒤늦게 과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A+를 받지 못해도 배운 게 있으면 된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진정으로 이를 납득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생을 더욱 길게 살아보니까 A+를 받았던 일들은 큰 의미를 띄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 배우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평가가 더 내려지는 걸 경험했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완벽하지 못했는데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오히려 내 미흡함에 더 사랑으로 보답해 주는 주변인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인간이 애초에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내 선에서 완벽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완벽성이라는 건 인간에게서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완벽하기를 갈망하는 것일까? 나는 사실 우리 교육 시스템을 탓한다. 무한 경쟁에 놓인 학생들은 밤낮없이 공부만 하며 서로 얼마나 완벽한 점수를 받았는지에 따라서 더 나은 인생의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누가 더 나은 인생을 살지는 끝까지 가봐야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길목은 무한 경쟁에 따른 방식을 따르고 있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또 다른, “취업"이라는 경쟁이 이들을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완벽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시스템이 그러한데 나만 다른 길을 갈 거라고 마음을 먹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로마에 갔으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한국에서 취업을 노리는 취준생은 그 법을 따를 수밖에.

    나는 문득 한국의 우산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는 비가 오면 누구나 다 우산을 쓰고, 우산이 없으면 비가 와서 갑자기 비싸진 우산값임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에 들러 구매하기까지 한다. 비가 오면 꼭, 무조건 우산을 써야 하는 한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매우 신기했다. 외국에서는 비를 조금 맞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비를 맞기 위해서 우산을 안 들고 나가 빗속의 낭만을 즐기는 때도 있다. 그래서 우산을 쓰기보다는 우비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랑비에는 우산을 챙기려는 생각조차 안 하는 버릇이 든 나로서는 아주 얇은 가랑비에도 우산을 바로 치켜드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지 굳이 살펴본다면, 그냥 비에 젖는 게 싫은 걸 수도 있겠지만 비 오는 과정을 그리 즐기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젖은 내 모습이 짜증 나는 게 아닐까? 완벽성이 무너지는 내 머리카락, 옷매무새 등이 비 내리는 낭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래서 우산을 아직도 드는 것을 힘들어한다. 웬만해서는 우산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은 미세먼지 때문에라도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싶다. 공들인 완벽한 머리, 옷, 신발보다는 집을 나서 약속까지 가는 그 과정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산은 거센 빗줄기가 내릴 때만 챙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와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