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개주차장-새남바위-용화산정상-고탄령-사이령-배후령
지난 지리산 바래봉 산행을 불참하여 한 달 만에 등산에 나서는데, 비가 올지 모른다는 예보가 있다. 요즘 들어서 산행을 나서기만 하면 비 예보가 있다. 그러려니 한다. 비가 오든 오지 않던 우린 갈 것이니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나름 멋진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경험을 통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성남, 하남을 거쳐서 구리를 지나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려서 2시간 30분 만에 용화산 큰 고개 주차장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 팀들로 좁은 큰 고개주자창에 차들이 가득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망설일 것 없이 맞은편 등산로 입구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경사가 시작된다. 준비운동을 하고 해야 하는데...
다 좋은 우리 산악회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등산 시작 때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바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나라도 준비운동을 좀 하고 산행시작을 하자고 나설 걸 그랬나 싶다. 20년 역사의 산악회 치고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좋지 못한 관습이나 부족한 점은 고쳐나가고 좋은 전통은 계승해야 진정한 명품산악회 아니겠는가?
600 고지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급경사를 타고 조심스럽게 바위에 박힌 발받침을 밟고 오르기를 20-30분 만에 새남바위 근처에 도착했다.
근처에는 100대 명산에 걸맞은 녹음 가득한 시원한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용화산 시그니처로 불리는 소나무 사이로 하늘이 구름을 불어내며 파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행 출발 전에 잠시 흐렸던 기분도 하늘처럼 맑아지고 있었다.
이번 산행에는 나의 작은 프로젝트가 있다.
그동안 틈틈이 연습하고 있는 하모니카 연주를 명산의 풍경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다.(사실 그동안 중단했던 유튜브를 은퇴 준비 차원에서 다시 시작했다.)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멋진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서 360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세우고 연주를 시작했다.
곡은 가수 양희은 씨의 "한계령"으로 선택했고, 용화산의 멋진 풍경에 어울리는 연주를 하고 싶었다.
역시 긴장은 실수를 유발하게 한다.
첫 테이크는 실패! 욕심이 과한 것인가? 음을 찾기 힘들다.
두 번째에는 틀리는 부분을 무시하고 그대로 강행하여 연주를 끝냈다. 연주하는 동안 지나가는 산우들의 시선도 무시해 가며 어쨌든 프로젝트를 마쳤다. 확인은 집에서 하기로 하고 곧바로 일행을 뒤쫓아서 정상 방향으로 향했다.
서둘러 일행을 쫓아가자니 산세의 가파름이 주는 숨과 하모니카를 불며 올랐던 숨이 보태져서 심호흡을 해야 할 만큼 많이 차오른다.
리듬이 깨지면 안 된다. 등산 역시 리듬이 중요하다.
잠시 멈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오른다.
정상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 얼른 벗어나고 싶을 만큼 정상석도 멋없이 크기만 하고 커다란 직육면체의 대리석에 인쇄체의 대표 격인 해서체로 멋대가리 없이 "龍華山"이라 새겨져 있다.
정상을 벗어나니 득남바위를 비롯한 이름도 다양한 기암들이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능선에 놓여 있어 찾는 이들의 멋진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감탄이 나온다. 지네와 뱀이 싸워 이긴 쪽이 용이 되어 올라 용화가 되었다는 산이름이 어울릴 만한 명산의 풍모이다.
여덟 폭 한국화 그림 병풍이 둘러쳐있는 듯 한 아름답고 한적한 장소를 만났다. 점심 먹기에는 어느 고급호텔의 로비가 이리 멋질까?
점심도시락 또한 예술이다. 특히, 성칠형님의 "묵은김치김밥"과 "소고기를 품은 계란말이"는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받기에 충분하다.
낭군 홀로 산행에 참여시킨 형수님의 성공!!!(성칠형님은 얼마 전 부터 형수님과 산행에 참석했는데 이번 산행에는 홀로 참여했다. 홀로 왔는데 우연히 같은 좌석에 배석된 김욱형님과 고교시절을 돌아보니 친구가 겹친다 칸다. 지네와 뱀이 싸워 누가 이겨 용이 된 지 모르는 사연만큼 재미나다. 저 연배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싶지 않는데, 한동안 두 분은 추억을 안주 삼아 막걸리 좀 마시겠다. 복섭형님도 추가! ㅎ)
달고 맛난 점심을 마치고 배후령으로 향했다.
고탄령을 지나고 사이령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된다고 산행 전 버스에서 명예회장님께서 몇 번 강조를 했는데...
알바를 했다.
일행보다 선두에 나서서 한 참을 가고 있는데 아무도 뒤를 따르는 기척이 없어서 잠시 기다고 서 있으니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미세하게 들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인 것 같아서 조금 올라서는 오랜만에 산악회를 찾은 친구 "궁시렁"이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다행이다.
혼자 그 길로 내려갔으면 어쩔 뻔?
알바는 하고 나면 두 배 힘든 게 아니고 세배 네 배 힘들다. 리듬이 깨진 탓이다.
그래서일까? 목적지가 더 멀게 느껴진다.
가능한 한 빨리 후미에 따라붙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등산에는 유독 약한 선출(선수출신) 아우님이 등산을 사랑하게 된 여왕님의 시종으로 참여했지만 되려 여왕님의 시중을 받으며 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지리산을 어쩌고 저쩌고.... 설악산을 어쩌고 저쩌고.... 재미있는 친구이다.
우리 부부처럼 두 사람이 친구였고, 우리 못지않게 재미나게 사는 글로벌한 부부이다.
이들과 합류하자마자 일행들은 배후령에 도착해서 이 부부들의 동선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천천히 조심히 오라는 배려와 함께...
우리만 제외하고 모두가 배후령에 도착한 모양이다.
전화에서 알려준 쉼터의 벤치 위에 토마토 몇 개가 놓여있다.
다 왔다는 표식이자 힘내라는 응원이다.
감동이다.
함께 하는 산행이 이래서 좋다.
산도 아름답지만 회원들의 배려도 아름답다. 그렇지 노래에도 있지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
이제저래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