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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Sep 09. 2024

17,000그루의 Uprooting!

업루팅 된 만 칠천 그루의 고목


엊그제 베트남 북부를 강타한 간 태풍 Yagi (야기)는 상륙전부터 세상 처음 보는 구름을 몰고 와 겁을 줬었다. 기상청의 태풍 레이더 사진마저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보여 태풍 상륙 카운트다운을 하며 베트남 땅의 모두는 숨죽여 시계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위력은 역시나였고 파괴된 수많은 판자 지붕들, 나무에 깔린 자동차와 오토바이들, 붕괴된 교량들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도시에 혼란이 닥쳤다.


태풍이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집 밖 거리의 모습은 참담 그 자체였다. 쓰러진 나무들은 도로를 사방으로 막고 있었다.

시내 대부분이 가로수 거리인 하노이에서 무려

17,000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두 손을 감아도 다 감싸 안을 수 없는 커다란 고목들이 뿌리째 업루팅 될 수 있다니…



이틀이 지난 지금도 아직 쓰러진 나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다.

치우려면 한참이 걸리겠다. 도시 정리를 하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고될까..


시간은 흐를 것이고

정리는 끝나겠지.

뽑혀야 할 것들이 뽑힌 것이라 위안을 삼아 본다.



하루아침에 나무들의 시체가 즐비한 도시의 거리

당황함 뒤에 몰려오는 어떤 감정들

백 년을 버텨왔어도

커다란 나무였어도

뿌리가 약한 것은

뽑혀야 할 것은

뽑히고 만다는 것을…


나의 삶에서도

나의 말의 습관에서도

뿌리째 뽑혀

업루팅(uprooting) 되어야 할 것들이

슬며시 하나하나 고개를 쳐든다.


끈질기고 우악스럽게도

뿌리 뽑히지 않는 것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작은 화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처 집 안으로 들여다 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얼마나 얼마나 미안해지던지…


그런데…

손가락보다도 얇은 줄기가

버텨내었다!

고목의 뿌리를 뽑아낸

그 무시무시한 태풍 바람을!


그저 휘어졌을 뿐인 약한 줄기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지지해 주고 벽에 살포시 기대 주었다

힘겨웠던 바람 다 잊고

잠시 기대어 쉬며 회복하라고



얇디얇은 줄기
그러나 깊고 강한 뿌리가
계속 무언가를 내게 말해주고 있다
태풍이 몰아 다 준 깊은 생각들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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