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즈음입니다.
서호(Tây Hồ) 근처 어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구불구불 몇 번의 턴을 하면 저 멀리 홍강과 맞닿을 것 같은 길목이 나타납니다. 울창한 야자수 길을 지나면 하노이 시내에선 도저히 볼 수 없을 법한 땅을 만나게 됩니다. 갑자기 달라진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며 도시 속 시골길을 30여분쯤 걷고 걸어요.
Manna Farm 만나농장
베트남 고아들을 후원하고 케어하시는 분을 통해 알게 된 곳입니다. 이 농장주도 그분이 케어하는 베트남 청년 중 한 명입니다. 하노이 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되는 자연의 초록 냄새가 충만한 흙의 땅입니다.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스캔이 끝난 아이들은 널찍한 닭장 안에 자리를 잡더니 대나무를 세우고 땅을 팝니다. 어른들을 잡을 함정을 만든다네요. 구멍을 파고 바나나잎을 덮고 그 위에 다시 흙으로 덮어 감쪽같은 함정을 만듭니다. 사이즈론 어른대신 닭이 잡힐 듯 하지만 녀석들의 아이디어가 가상하여 포획당하기를 기다려보긴 또 처음입니다.
수박 심은 데 토마토 난다
다섯 고랑 정도를 만들 수 있는 땅을 일 년간 분양받았습니다. 세 아들 이름이 J로 시작하여
'J3 Brothers네 텃밭'이라고 우리 밭 푯말을 알록달록 만들어 꽂아 두고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네요. 안탑깝게요.
한 날은 케냐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는데 남편을 도와 고랑을 갈고 씨 뿌리기를 함께 해 주었습니다. 케냐인의 하노이 적응기도 들으며 그들과 힙하게 신나게 씨를 뿌리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답니다.
인생 첫 우리의 텃밭에 무얼 심을까 아들들과 고심고심하여 사온 첫 씨앗이 수박씨였는데요. 무사히 초록 싹이 피어나기를 주말마다 물 주고 흙을 다독거리며 고대했건만…
결과는요???
기대기대하던 아기 수박대신 쪼꼼한 토마토 방울들을 마주했더랬지요!!! 와~그 순간의 그 황당함이란… 너무 당황하여 남겨진 사진 한 장 없습니다.
과연 누구의 탓일까요?
봉투를 바꿔치기한 씨앗 집 누군가의 앙큼한 소행이겠지요?

수박대신 토마토를 마주한 우리는 급 허기가 졌습니다. 바로 그때 농장의 베트남 친구들이 분보남보(고기와 땅콩이 들어간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었는데 정말 꿀맛이었지요. 역시 새참의 기쁨은 국경을 넘는 것 같아요. 농사일을 한 자들에겐 불면증 따위도 감히 못 온다지요~잠을 못 잘 땐 에브리바디 농장으로~~
모두들 부른 배를 두드리며 5분쯤 걸어 나가자 홍강이 나타납니다. 홍강을 위해 이 땅을 위해 작은 환경 운동을 실천하자던 우리는 잠시 함께 쓰레기를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요.
이 사진들은 도저히 얼굴을 가리고선 이 느낌을 전달할 수가 없어 사진을 공개합니다. 오른쪽 저 개굴개굴한 개구쟁이가 저희 집 막내의 일곱 살 적입니다. 이 농장에 네 가정이 가서 여덟 명의 아이들과 두 마리의 강아지들이 아주 그냥 홍강을 집 마당 삼은 대단한 날이었습니다.
흰둥이 럭키도 농장 주인의 강아지 미누도 합세한 으아아 대략 진흙탕 난감이죠?
저희를 여기로 인도하신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주말농장에 오는 가족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요.
이런 장면을 보며 으아악 ~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부모 부류와 저 아이들과 흰둥이가 흙강아지로 변하는데 같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하는 부모 부류 둘로 나눠진다고요. 그날 저희 팀은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차마 직접 들어갈 수는 없으니 신나는 추임새를 힘껏 더해주며 아이들과 기쁨을 함께 누렸더랬죠.
이 어린이들과 흰둥이는 진짜 물 만났습니다.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는 홍강의 밀물 현상이 저희가 쓰레기를 줍던 순간 기적처럼 나타났거든요. 주말 농장을 운영하시는 분도 2년 만에 보는 드문 광경이라 하셨습니다. 다들 환호를 지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흙이 드러난 홍강으로 뛰어 들어갔더랬죠. 그렇게 아이들은 한국의 갯벌체험대신 홍강 진흙밭에서 원 없이 한바탕 구르고 농장에 하나뿐인 우물 펌프를 팔 떨어져라 퍼올려 한 녀석씩 씻느라 캄캄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뚱(Tùng)은 농장주 베트남 청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 후원받는 그가 또 다른 화가 친구 뚜언(Tuan)에게 자기의 소유를 쪼개주고 오갈 데 없는 그의 할머니도 모셔와 농장에서 함께 지내시도록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위에 또 아름다운 사람들이 겹쳐사는 세상이지요. 겹쳐져서 더 화려하고 풍성히 아름다운 겹벚꽃의 후드러짐 같습니다. 제 곁에 참 근사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노이 삶 속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농장 스토리는 보석 같은 파트 중 하나예요.
이후로 7년 여가 지났어요. 저는 주말 농장은커녕 주말에는 시간만 나면 침대에 달라붙어있길 즐기는데 이 농장을 후원하시고 케어하시는 분은 지금도 한결같이 고아와 미혼모들을 돕고 계시고 베트남 실버타운의 비전까지 품고 사업을 하고 계신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시는 분이시죠. 며칠 전에 올라온 포스팅은 매주 일요일마다 농장에서 쿠킹클래스를 여신 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뜨끔한 레이지 마틸다는 감동만 할 뿐이었죠. 그래서 7년 전 이야기를 길어 올렸습니다. 전에는 이런 클래스는 없었는데 많은 발전과 노력을 거듭하시는 모습이 참 뭉클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잊고 산 자와 오랜 시간 꾸준한 자의 모습의 대비가 극명하니 저는 오늘 저녁이라도 굶고 반성을 해야겠어요. 저도 이 땅에서 무언가 남기고 가야 할 텐데요.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생각에 잠겨봅니다. 생각은 고만하고 Take Action! 해야겠죠?
하노이를 여유 있게 자유여행으로 오신다면 시내에서 시골길을 걸어보고 신선한 농장체험을 해봐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어 정보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오토바이 매연 가득한 하노이에서 피톤치드 힐링도 하고 농장에서 키운 신선한 채소들로 베트남 쿠킹클래스까지 체험해 볼 수 있다니 너무 괜찮잖아요. 한국돈 약 4만 원(88만 동)에 농장 쿠킹 클래스 체험과 식사가 제공되는데 애피타이저 2, 메인디쉬 2, 디저트 1, 비어까지 포함된 금액이라니 더더욱 가성비 체험비용입니다.
음.. 그리고
오늘이 무슨 날일까요~?
베트남에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날이기에 그냥 주말농장 이야기만 하고 지나가기엔 섭할 것 같아서요.
원래도 4/30은 통일 기념일 5/1은 노동절로 샌드위치 재량 휴일까지 겹쳐 4일에서 5일간의 국가 공휴일입니다. 연 중 구정 연휴 다음으로 제2의 긴 연휴 기간이거든요. 모두가 여행으로 휴식으로 들뜨는 기간입니다. 비록 저는 계속 일하지만요.
아무튼 올해는 매우 스페셜합니다.
그냥 통일 기념일 아니구 베트남 남부 해방 및 국가 통일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거든요. 국가 영웅 호찌민 주석을 기리고 국가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대단한 날입니다.
예술 공연과 행사들 각 부대의 대규모 열병식이 이루어져 온 나라가 며칠 전부터 떠들썩합니다.
집집마다 빨간 국기가 휘날리고 영웅가가 울려 퍼집니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한 우리 집도 올해만큼은 베트남 국기를 달아야 할 것 같아서 냉큼 국기를 사서 걸었지요. 안단 놈이 간첩? 되는 거 같기도 해서 얼른 눈치껏 국기를 샀습니다.
저희 집 바로 건너편에 베트남 초중고 학교가 있는데 평소에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운동장에서 축제를 하는 바람에 온종일 귀마개를 하고 지내야 하곤 한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7시부터 귀마개도 뚫어버릴 데시벨의 영웅가가 울려 퍼지고 빨간 국기로 장식된 학교에 빨간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을 펄쩍펄쩍 뛰 다니며 춤을 춥니다. 귀가 아파서 도저히 문을 열 수가 없을 정도인데 학생들은 한껏 신이 났습니다. 전쟁도 안 겪어본 세대가 이 날이 그렇게나 좋은 건가 기특하기도 합니다.
으아아 그렇지만 저는 아니라구요.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귀를 막고 견뎠지만 하교 시간까지 계속될 분위기입니다. 이건 탈출밖에는 답이 없어!라고 결론 내리고는 그랩 택시를
얼른 잡아 탈출을 기도합니다.
차 문을 닫음과 동시에 아 이제 해방이다~를 외쳤건만
뜨하~~ 왠 걸요!!!
택시 기사도 영웅가를 크게 틀고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
절대로! 결코! 차마!
님아! 그 오디오를 꺼주시오!라고 했다간
추방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협감을 느낍니다.
대단한 날이니까요!
온 국민이 영웅 호찌민을 칭송하는데 감히 들이댈 수 없습니다.
이방인은 조용히 귀를 막고 합죽이가 됩니다! 합!!
귀는 힘겹지만 베트남의 50주년 해방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겠습니다. 호찌민 같은 국가 영웅이 있는 이 나라의 단결력을 새삼 부러워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