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람의 그릇에 대해서

나는 어떤 그릇을 몇 개나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by 더할 감자

싱크대에 포개 둔 그릇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도 다 저런 모양이구나. 어떤 그릇은 얕고 넓어서 한눈에 많이 담고, 어떤 그릇은 작고 깊어서 뜨거운 걸 오래 품는다. 우리는 쉽게 “이 사람은 그릇이 크다, 작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무엇을 담을 수 있느냐 아닐까.


“사람의 그릇은 여러 개일까?”


우리는 다들 여러 그릇을 들고 살아간다. 밥그릇, 국그릇, 접시, 머그컵 같은 것들. 내가 지금 국그릇으로 진지하게 나누고 싶은데, 상대는 얕은 접시만 들고 있다면 국은 흘러넘치고 마음만 지저분해진다. 이건 누가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릇이 안 맞은 상황일 뿐이다.


같은 글을 읽어도 반응이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는 인정하고, 누구는 빈정댄다. 그릇의 모양과 용도가 다르니까. 글이 말하고 싶은 건 머그컵에 담긴 커피인데, 누구는 밥그릇을, 누구는 접시를 꺼내 든다.

그래서 ‘큰/작은’으로 재기보다 무엇을 담는 그릇인지부터 보면 오해가 줄어든다. 눈앞의 사람이 밥을 담는 그릇인지, 국을 담는 그릇인지, 향을 머금는 잔인지.



나도 한동안 ‘그저 큰 그릇’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며 무작정 더 이해하고, 더 참아내고, 더 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어딘가 넘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성격과 생각이 점점 낯설어지고, 이러다 주체가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저 넓은 접시가 되려고 발버둥 친 셈이다.


그러니 국 같은 건 담을 생각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내 그릇의 모양을 알아가는 일이 먼저라는 걸.



넓은 그릇에서는 작은 그릇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국은 오히려 작은 국그릇이 어울릴 때가 많다. 세상은 여러 가지 요리를 내고, 우리는 각자 다른 모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나랑 다른 그릇을 만났을 때 서둘러 재단하지 말고, 무엇을 담아 왔는지 먼저 물어보자. 그 한마디가 식탁을 이어 준다. 끼리끼리만 모일 필요도 없다.



결국 포인트는 ‘크다/작다’가 아니라 맞다/맞지 않는다다.

오늘의 나에게 맞는 그릇, 오늘의 너에게 맞는 그릇. 우리는 매일 모양을 조금씩 바꿀 수 있고, 때로는 다른 그릇으로 갈아타면 된다. 자기 전 일기,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모릅니다”라고 말한 뒤 배우러 가는 걸음.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내 안에 새 그릇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내 그릇을 씻는다. 서둘러 포개지 말고, 모서리에 남은 밥풀까지 헹군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담을 자리가 생긴다. 언젠가 너의 그릇과 내 그릇이 같은 식탁에 놓이면, 우리는 서로의 모양을 존중하면서 따뜻한 것을 나눠 담을 수 있을 거다. 큰 그릇이 아니라, 좋은 그릇으로.



오늘 내 그릇엔 뭐가 담겼지? 내일은 어떤 그릇을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