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미역국은 좁고 깊은 그이의 품과 같았다
미역은 혈압에 좋다. 미역은 혈액순환에 좋다. 미역은 암 예방에 좋다. 미역은 소화에 좋다. 미역은 지방을 분해하고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방해하며 중금속을 흡착 배설시키고 배변을 원활하게 하여 다이어트에도 좋다.
무엇보다 미역은, 마음에 좋다.
나는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키우며, 엄마는 내게 수천 가지의 음식을 해주었겠지만 유독 미역국에서 엄마 맛이 짙다. 대학시절 자취를 할 때 오랜만에 집에 오면 엄마는 돼지고기 주물럭을 해주랴 닭볶음탕을 해주랴 갈비탕을 해주랴, 아님 무얼 해주랴 하시며 갖은 먹고픈 것을 물었다. 그럼 난 항상 미역국을 끓여달라 했다. 엄마는 고작 고거냐 하셨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면 늘 기겁할 만큼 많은 양의 미역국이 들통 한가득 채워져 있었고 나는 집에 머무는 며칠간 열심히 미역국을 퍼 마셔야 했다.
내 새끼 고기한 점 더 먹이고 싶어 사골국물에 조갯살이며 소고기며 담뿍 담아 끓인 엄마의 미역국을 질리도록 마시고 나면 보약 한 첩이라도 다려마신 듯 기운이 번쩍 났다. 언제까지고 속이 든든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뽀얗고 진한 국물에서는 엄마 맛이 났다.
엄마의 미역국엔 손길이 담겨있다. 단지 손맛이라고 불리는 베테랑 주부의 솜씨, 그 이상의 쓰다듬음 같은 것.
끓는 점을 넘어선 온도의 높음, 그 이상의 온기 같은 것. 혀가 목구멍이 그리고 이내 가슴이 따뜻해지는 위로 같은 것. 엄마의 미역국은 좁고 깊은 그이의 품과 같았다.
왜 미역국이었는지 모르겠다. 김치찌개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는데 하필 미역국. 미역국을 끓이는 엄마의 뒷모습은 끝내 거룩했으니. 날 낳은 어미의 몸을 보했던 음식이라 그럴까? 매년 날 낳은 날을 기념하던 음식이라 그럴까? 모르겠다. 하지만 난 분명 미역국에서 엄마를 맛본다는 것. 엄마의 미역국은 날 위로하고 보듬고 쓰다듬는다. 깊이 안아준다. 아무리 조미료를 들이 부어도 내가 끓인 미역국에서 결코 엄마의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자식이 끓인 것이기 때문일 테다. 언젠가 엄마의 미역국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땐 커다란 위로 하나 함께 소멸하는 셈이다. 그 맛, 평생 그리워할 테니. 그 품, 평생...
자주 끓여달래야겠다. 많이 먹어둬야겠다. 그 맛, 기억해서 혀뿌리까지 박아두어야겠다. 후에, 엄마가 차갑게 식어버릴지라도 엄마 맛은 여전히 기억나도록.
따스한 엄마를 마실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