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일들을 말이 되게 만드는 선수, 여러모로
수많은 구기 종목 중 축구는 가장 적은 골 수로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일 것이다. 마음먹고 수비에만 집중하면 90분 동안 1골 구경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1골 차 리드팀의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경기 막판 시간 지연마저 어느 정도는 전략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선수 개인 역량보다 전술적 완성도가 경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대 축구에서는 공격수들도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골은 더 적어졌고 시스템과 공간이 경기를 지배한다. 언더독의 반란이 잦아진 이유도 수비에서 역습으로 가는 전술의 발전 덕분이다.
수준 높은 팀들 간 경기에서 1골의 무게는 크다. 제 아무리 바르셀로나라고 해도 PSG정도의 팀에게 4:0으로 패한 2016-2017 챔피언스리그 1차전의 결과를 뒤집긴 어려워 보였다. 세비야를 이끌고 유로파리그 3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에메리 감독에게 부족한 건 스쿼드 퀄리티였다는 듯,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PSG 스쿼드가 주어지자 너무도 손쉽게 바르셀로나를 격파했다. 이토록 MSN이 무기력해 보이는 경기는 없었다. 엔리케 감독 역시 이날만큼은 선수 덕 보는 거품감독이라는 비아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메시-수아레즈-네이마르 편대의 MSN은 라이벌로 거론되는 동리그 BBC보다도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게 암묵의 평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세계 최고 공격력을 퍼붓는다 해도 PSG를 상대로 4:0은 역전은 그 단어를 거론하는 것조차 과대망상처럼 느껴졌다. 챔피언스리그 2차전을 버리고 리그에 집중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싶을 만큼. 이번 챔피언스 리그는 여기까지구나, 모든 바르셀로나 팬들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PSG와의 2차전을 앞두고 네이마르는 이런 말을 남긴다.
“가능성은 1%라도 우리에겐 99%의 믿음이 있다.”
좋은 태도였다. 팬들 앞에 투지를 보여주는 프로의 모습. 멘탈 좋은 선수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처럼 보였다. 말이라도 이렇게 하는 게 옳을 뿐. 어떻게 보아도 현실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그 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바로 바르셀로나와 PSG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실시간으로 시청한 것이다.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래 가장 전율 돋는 경기였다. (리버풀 팬인 내게 소름으로 따지면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리버풀의 2005년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기가 최고였지만, 실시간으로 시청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논외로 한다.)
네이마르가 언급한 1%는 얼토당토 않게도 100% 의 현실이 되었다. 그래, 얼토당토, 가당치 않은, 이런 표현들만 입에 맴돌았다. 2차전 스코어 6:1로 합계 스코어 6:5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가 기적 같은 8강 진출을 일군 것이다. 보면서도 실제 상황을 목격 중이란 실감이 들지 않았다. 현실임에도 현실성이 별로 없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MSN은 비교대상 없는 지구 상 최고의 공격 트리오가 확실했다. 물론, 중원과 수비라인도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다. 팀 모두가 잘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네이마르가 있었다.
말뿐 아니라, 이 날 네이마르는 정말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늘 여유롭게 상대 진형을 휘저으며 개인기를 뽐내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쉴 틈 없이 내달렸다. 이토록 간절한 모습의 네이마르는 처음이었다. 3개의 유효슈팅과 2골 1 도움. 평점 9점. 적어도 이 날의 바르셀로나는 메시가 아닌 네이마르의 팀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경기 후 네이마르는 한 마디를 더 남겼다.
“누구든 꿈을 꾸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_
바르셀로나에는 최상급 선수들이 모여있고, 그 중에는 메시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서로의 실력에 대한 믿음은 그 어느 팀 동료들보다 확실하다. 하지만, 네이마르 스스로 믿음의 실현을 향한 중심에 서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기적이었다. 나는 이 날 신들린 네이마르를 보았고, 메시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느꼈다.
99%의 믿음은 결국 자신의 목표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메시의 돌파와 수아레스의 결정력, 부스케츠의 키핑과 이니에스타의 킬패스, 피케의 피지컬, 마스체라노의 홀딩, 믿을 구석은 많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기에 네이마르는 두고두고 역사에 회자될 경기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후대는 이 경기를 네이마르 인생 경기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이미 끝나버린 4:0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생 경기’는 가장 최악의 순간에 가장 드라마틱한 역전으로 일구어지기도 한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가 2차전으로 치러지는 이유는 역전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라는 의미가 아닐까? 가능성은 1%면 충분하다. 당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99% 내가 나를 믿어준다면, 평점 9점의 인생 경기를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있다.
항상 염두해야 할 것.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