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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Jun 13. 2024

만화경 |  브라이언 셀즈닉 |  니케주니어

어릴 적 친구와 나누던 환상적인 이야기. 그 속에서 마음껏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두 발은 집 앞 대문 앞에 착지하고 현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도 헤어지며 아쉬운 듯 내일 보자고, 또 이야기하자고 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간혹 설레면서 몽롱한 그때의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주로 어떤 냄새를 맡을 때입니다. 이야기 입자가 어디선가 폴폴 날아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된 장면이 미세한 입자로 공기에 섞여 떠돌다가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순간, 그때의 기억입자를 끌어당기는 겁니다. 음.. 제가 너무 멀리 갔네요.

그런 경험 외에 어린 시절로 생각 여행을 하는 때는 책을 볼 때입니다. <만화경>은 신비로운 기억을 불러오네요. 무엇이 있을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호기심을 등불로 켜고서 용감하게 걸어갔던 모습이 보였습니다.

책 속의 단편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책을 끌어안게 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안쓰러워서 토닥이고 싶다가, 나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잠시 덮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에는 이야기 속의 제임스가 그리웠습니다.


24쪽  중요한 것은 바위에 드리워진 그의 작은 그림자를 보았을 때 내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는 사실이다. 비록 내가 그에게 항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혹은 강 건너편에 머물고 있더라도 그는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61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기름칠을 하고 태엽을 감아 줘야 하는 기계라고 생각해. 자기가 시간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시간은 그보다 더 다루기 힘들 수 있어. 어쩌면 더 크고, 더 이상하고, 통제할 수 없고, 끝이 없고... 위험할지도 몰라.

110쪽  그분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아. 나는 제임스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그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지듯 종이 더미 위에 살포시 손을 얹고서 말했다. 사과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사실 말이야.

151쪽  지금은 그 종이쪽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게 없어도 <꿈책>을 불러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쪽지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의 손글씨가 그립다. 제임스가 보고 싶다.

163쪽  번데기는 나뭇잎에 보석처럼 매달려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는 왕자가 되고, 왕자는 왕이 된다. 씨앗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책과 집이 된다. 구름은 비가 되고, 낮은 밤이 되며, 여름은 가을이 되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

190쪽  놀랄 일이 없는 삶은 슬플 것 같아. 너는 신이 슬퍼한다고 생각해? 모르겠어.

198쪽  제임스는 단지 내 손에 닿지 않을 뿐, 내 주변 어디에나 있었다. 불꽃은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공중에서 멈췄다. 그 순간 불씨와 별들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불씨는 이내 땅으로 떨어지거나 꺼져 버린 반면, 별들은 그 자리에서 반짝거렸다.



어린 시절로 즐거운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니케주니어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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