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꽃이 무엇이었나
넷플릭스에서 또 하나의 명작을 탄생 시켰다. 바로 < 폭싹 속았수다 >이다. 인생 드라마 절반은 넷플릭스 시리즈여서 그런지 이번 드라마도 너무 만족스럽게 감상했다. 내 최애 가수이자 배우 아이유 ( 이지은 )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였기에 나의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내 취향에 너무나도 잘 맞고 휴머니즘이 가득 담긴 명작을 오랜만에 만난 거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인생 드라마에 들어간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폭싹 속았수다는 내가 여태까지 봤던 가족을 소재로 삼고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으뜸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재를 떠나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아버지 어머니 세대, 그리고 지금의 우리 2030 세대. 각자 살아온 시대가 다르지만 이 모든 세대가 다 같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었던 정말 따스하고 푸근한 드라마였다. 각 시대 별 뉴스가 흘러나오는 장면과 신문을 비춰주는 장면은 몰입감을 더욱 증폭 시켜주었다.
( 우리 부모님은 이 드라마에 재현되어 나온 피카디리 극장을 보며 살짝 울컥하셨다고. )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중인 나에게 있어서 이 드라마는 엄청난 감성 자극제이기도 했다.
요즘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는 시점이라 그런지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관점의 폭이 점점 넓어진다는 것을 나름 체감 중이다 보니
더 와닿았다. ( 훗날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더욱 체감이 될 것이겠지만. )
극에서 애순이의 남편이자 금명이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박해준 배우를 볼 때마다 성격도 그렇고 우리 아빠랑 너무 비슷해서 뭉클했고, 90년대 금명이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마다 우리 엄마의 젊었을 시절 사진이랑 상당히 비슷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 금명이의 헤어스타일 고증이 너무 잘 되어있다. ) 부모님의 연애 스토리를 들었어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몰입이 많이 되기도 했다.
영범이와 금명이의 연애 스토리가 나는 왜 그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 이별 진통을 세게 겪은 사람들 대부분은 분명히 이 장면에서 서글펐을 것이다. 헤어지면서 비도 맞아보고 눈도 맞아보고...)
배우들의 연기력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명배우들이 읊는 대사 하나하나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지은 배우를 비롯해 염혜란 배우, 나문희 선생님, 박보검 배우, 박태준 배우, 문소리 배우, 최태훈 배우, 이준영 배우, 정해균 배우 등등 아 말해 뭐해.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학씨 아저씨, 서로 짓궂은 말 다 해가면서도 챙겨주는 제주 해녀 할망들, 광례 ( 애순이의 엄마 )의 마지막 부탁을 기억하고 결혼한 애순이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배 한척 마련해 준 애순이의 할머니. 나름 츤데레 였던 애순이의 작은 아버지. 마치 인생 주변 어딘가에서 마주쳤을만한 그 시절 분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느낌이었다.
이 드라마 최고의 강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시적인 대사들이다. 주인공 애순이가 문학소녀였고 시를 좋아하는 인물로 나왔던 만큼 시를 중점으로 두고 대사들에 시적 표현을 많이 담아둔 듯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만한 대사들이 가득했다.
나를 울린 대사 두 문장을 적어보자면
1.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 나의 그동안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울증이 심했을 당시 모진 말 많이 뱉었다. )
2. 나는 네들이 날면 꼭 내가 나는 거 같애.
( 13년 전, 첫 유학을 갔을 때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를 상상해 보았고, 그동안 부모님이 나와 동생을 데리고 해외여행 이곳저곳 다녔던 이유도 자식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했던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드는 대사였다. )
이번 3월 내내 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마다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를 시작으로 더 재밌고 풍부한 대화를 많이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젊었을 시절을 다시 한번 물어보며 두 분만의 드라마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 모든 이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나의 부모님은 항상 그립고 보고 싶은 존재라는 단순하면서 막연한 생각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 드라마였다. 그리고 부모님을 더불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너무나도 듣고 싶어졌다.
정말 모든 세대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식은 무심코 자연스럽게 부모의 어느 한쪽 면을 닮아간다. 일을 할 때,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인간관계를 쌓을 때,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무언가를 보고 표현할 때도 알게 모르게 그 한쪽 면이 잠시 나타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 한쪽 면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똑같이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었을 즈음에서야 내 행동 하나하나에서 부모의 어떤 면을 닮았던 것인지를 알게되는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만큼 내 자식에게도 그만큼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서툴기도 했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간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더 크게 상기시켜주는 하나의 문장이라고 느껴진다.
겨울의 끝을 알리는 3월 초에 시작하여 꽃이 피어나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말에 막을 내린 폭싹 속았수다. 잠시 놓쳤던 서로를 돌아보게끔 만들어준 이번 작품은 정말 큰 여운을 남겼고, 3월 동안 우리 가족을 포함해 대한민국 수많은 가족들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게 해주었다. 3월이라는 시간과 드라마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고, 그 꽃이 다시 활짝 피어나기 바랐을 임상춘 작가님만의 깊은 뜻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