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4월 4일 짧은 입원 일기

인생 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by 낭말로

4월 2일~ 4월 4일 짧은 입원 일기

2025년 4월 2일 수요일, 인생 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저번 주 3월 27일 목요일 저녁부터 하지불안 증후군 같이 하체 쪽이 쑤시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새벽까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갈증이 심했고 소변을 자주 보러 갔다. 그때는 여느 때와 같이 내일이면 괜찮겠지 싶었다.


금요일부터 온몸에 열이 났고 오한이 찾아왔다. 중간에 타이레놀을 먹고 좀 괜찮아졌지만 밤에 소변을 보는데 아프고 작열감이 느껴졌다.


다음 날 토요일 점심쯤에 일어나서 다시 소변을 보는데 또다시 아프고 뜨거웠다. 색이 엄청 누랬다. 몸에 힘이 없었고, 식욕이 많이 떨어졌다.


일요일에는 증상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이건 단순 감기는 아닌 거 같아 월요일에 곧장 동네 내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혈액 검사, 소변 검사를 받았고 4월 2일 수요일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 하여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틀이 지나고 4월 2일 내과를 다시 찾았다.

제발 정상이어라 하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과 대면을 했다. 다른 곳은 문제없는데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높게 나왔다는 말을 하셨고, 진료의뢰서를 끊어줄 테니 곧장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와서 응급실로 가는 택시를 잡는 와중에 살짝 울컥했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해 동네 의원에서 받은 서류를 건네고 병상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3년 전 아빠의 뇌경색으로 인해 찾았던 응급실,

2년 전 동생의 이석증으로 인해 찾았던 응급실.


원래는 보호자로서 이 둘을 데리고 왔었던 내가 이제는 이 응급실을 환자가 된 입장으로 찾아오게 됐다. 너무나도 익숙한 응급실. 원래는 병상 옆에서 하염없이 핸드폰만 바라보며 기다렸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2년 전 동생이 누워있던 그 같은 병원 같은 자리 병상에 누워있으니 충격이 세게 다가왔다.


급격하게 올라간 간 수치. 작년 7월 건강검진 때 주의를 받았었지만 웃어넘겼다. 40이 정상인데 1900이란다. 미쳤지 미쳤어. 간은 한 번 손상이 간 이상 자가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2차 충격이 왔다. 인생 살면서 처음으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뼈가 부러진 적도 없었고, 큰 병이 생긴 적이 없었기에 병원 입원은 나에게 먼 이야기와도 같아 보였다. 동생과 아버지가 입원을 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었지만 아직은 젊다 보니 몸은 멀쩡하겠지라며 내심 마음을 놓고 지냈다.


애써 몸이라도 멀쩡했으면 싶었다. 나조차도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불안이 가득 찬 정신을 매번 붙잡고 살기에도 벅찼다. 어쩔 땐 정말 괜찮은 적도 있었지만 때로는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려 노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심장은 엄청 뛰는데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혼자 계속 싸웠다. 근데 알고 보니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산 게 아니었다. 정신을 오히려 놓고 살다 보니 몸마저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맥주를 원래 좋아하긴 했었지만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너무 그 이상을 들이 부운 탓이었을까. 정신과 약도 약이지만 여러 생각을 떨쳐내려 술을 자주 입에 댄 것이 화근이었던 거 같다.


안 그래도 아빠가 이것저것 짐을 가지고 응급실로 왔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정말 이상했다. 응급실에서부터 친한 형과 카톡을 했다. 원래는 월요일에 만날 형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응급실에서 연락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속으로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부모님 앞에서 친구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 너가 니 모습을 좀 봐. 정상이냐 이게. )


오후 5시에서 저녁 8시까지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기다리다가 입원 수속을 진행했다.

4인실로 배정을 받았고 9시쯤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에는 딱 한 분 계셨다. 나는 맨 끝 창가 자리에 배정을 받았는데 정말 감사했다. 고개 잠깐만 돌려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내리쬐는 햇볕을 있는 그대로 만끽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살짝 웃었다. 뭐지 이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타가 왔다. 항상 무언가 닥쳐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병원 1층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저녁을 먹지 못해 배고팠는데 간만에 알찬 조합으로 끼니를 때웠다. 친한 동갑내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 아직은 친구 한 놈 떠나보내기 이르다. "였다. 그 말을 듣고 잠깐이나마 웃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후회도 후회지만 그냥 지금은 오직 치료 잘 받고 나를 위해 더 신경 쓰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조만간 카메라 들고 여행 가야 하는데... 어떡 하나라며 밤잠을 설쳤다.


4월 3일 목요일,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바람에 아침 5시쯤 잠깐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다.

많이 쌀쌀해서 오래 못 있고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원래 이 병원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항상 아무렇지 않게 별생각 없이 들르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링거 폴대를 끌고 다니며 이곳을 다시 바라보니 그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익숙함 속에 가려져있던 소중함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아침 9시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다시 받은 혈액검사 결과 아직은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퇴원 시기를 정할 수 없고 소변검사가 아닌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나온 거라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간염 같아 보이지만 조금 더 지켜보면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수액을 맞고 약을 먹으면서 간 수치가 어느 정도 낮아지게 되면 퇴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이셨다.


점심에 병원밥을 처음으로 먹었다. 아침밥은 사실 귀찮아서 먹지 않았다. 채식 위주로 나오는 밥이었지만 맛있었다. 약간 작년 템플스테이를 다시 온 기분이었다. 그때 절 밥이 많이 생각났다.


4월 3일은 잠만 주구장창 잤다. 전날 잠을 설쳤던 탓에 오후부터 밤까지 잠을 잤다. 중간중간마다 간호사분들께서 혈압체크를 해주셨다. 매번 혈압이 몇 나왔는지를 듣는데 조금 놀랐다. 정상 혈압이 나오길래 어? 뭐지? 싶었다. 왜냐하면 입원하기 전까지 평소에는 혈압 수치가 140 이상은 나왔었다. 고혈압 수치였다. 아버지가 고혈압이셔서 유전 때문인 것인지 불안장애 때문인 것인지 헷갈렸다. 아니면 둘 다 합쳐진 탓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근데 늘 달고 사는 불안장애 때문이었다는 걸 드디어 알게 되었다. 불안장애도 혈압에 큰 지장을 준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다. 매일 긴장 상태로 살고, 주변에 사람 많은 곳을 가면 땀도 폭포수 마냥 흘리고, 심장도 많이 뛰었다. 게다가 커피까지 마시면 몸이 살짝 뜨겁고 심장이 진짜 터질 듯 했었으니 혈압이 정상으로 나오기 힘들었다.


4월 3일은 잠으로 보내고 4월 4일 아침 6시쯤 일어나서 다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수액이 엄청 줄어든 걸 보고 몸에 저 정도나 들어갔구나 하고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침 8시쯤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다시 뽑고 아침밥을 먹었다. 노곤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2시간 뒤쯤 간호사분이 오셔서 오늘 퇴원 가능할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간염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는데 간 수치는 여전히 높지만 꼭 입원이 아닌 외래 진료로도 가능할 거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다음 주쯤 알게 될 원인이 무엇일지 좀 떨리긴 했지만 나름 다행이다 싶었다.


짧은 입원 생활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주변을 보는데 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풍경이 주는 소중함을 여태 몰랐구나, 건강 관리 잘하자 등등. 집으로 오니 정말 마음이 편했다. 다음 주가 제대로 된 시작이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으려 한다. 내가 나를 버렸던 만큼 잘해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 잘 살아보자. " 얼마 전 내 인생에서 의인과도 같은 형이 보내준 카톡 답장이다.

진짜 잘 살아보자. 내가 나한테 잡아먹히지 말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 몸, 정신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따스한 봄이 찾아온 만큼 아름다운 꽃들을 실컷 감상하고 즐기시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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