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에필로그 Ⅰ

이별

by 낭만찬

그녀의 에필로그 _ 이별


그는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가장 예쁜 낙엽을 주워 주겠다며 온 동네를 강아지 마냥 뛰어다니고, 전자기기의 사용설명서를 정독한 후에야 겨우 전원 버튼을 눌렀으며, 어린 시절의 가요 앨범 판매량을 월별로 기억할 만큼 음악을 사랑하지만 음의 높낮이를 허락하지 않는 슬픈 성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덤덤한 나에게 지치지 않고 사랑 고백과 조롱을 함께 하는 ‘다정한 조롱꾼’이었다. 이런 신기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낯섦. 나는 그런 그에게 끌렸다.


낯선 끌림과 함께 깨달은 것은 ‘정말 다르다’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생각과 성향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싸이월드 감성의 음악을 즐기는 그와 밴드 음악을 즐기는 나의 음악 취향, 멜로 같은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찾는 그와 화려한 영상미를 중시하는 나의 영화 취향, 시험 전 도서관에서 2주일씩 공부하는 그와 집에서 벼락치기하는 나의 공부 스타일 등 어느 것 하나 공통된 사항이 없었다.


이렇게 다른데 연애가 가능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연애는 이 다름을 어떻게 하면 함께 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매우 실험적인 연애였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며 서로의 다름을 경험해 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3년을 함께 했다.


내가 먼저 취업을 하고 그가 취업 준비생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사내 팀이 변경되면서 업무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일에 허덕이며 야근을 거듭하고 주말까지 반납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업무를 나눌 수 있는 팀원들도 없었다. 오롯이 나만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지금이라면 다른 경로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변화를 요구했겠지만 그땐 나도 사회 초년생... 십여 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지쳐가고 있었고 이런 나의 상황과는 별개로 그는 연락이 뜸해지는 나를 불안해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렸고 그런 그를 이해시키기 보다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매일의 일과를 소화하는 것에 더 몰두하던 나였다.


이러한 시간이 한 달, 두 달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흔들리는 그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에게 보내던 잘 될 거라던 위로와 우리의 관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심 어렸던 말들에서 진심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었지만 달라지는 상황에 변해가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가질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달랐지만 다름을 존중한다는 하나의 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다름이 점점 그 본래의 형태를 찾아가듯 평행선을 긋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섬세한 그가 나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무기력함을 내가 감지하지 못 할리도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나를 대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싸라기눈처럼 조금씩 차갑게 쌓여가고 있었다.


그의 취준생 시절이 끝나는 순간.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의 미래를 축하해 주었다. 흔들리던 그가 이제는 안정을 찾고 우리는 함께 힘든 시기를 통과하여 다시 예전처럼 취향을 존중하는 자세로 잘 지낼 수 있으리라 희망을 잠시나마 품었던 것도 같다.


그는 한 달 정도 서울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기 위해 내 옆자리를 비워야 했고 그 공백기 동안 나는 깨달았다. 아. 내 옆에 없는 그를 나는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구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지난 시간에 대한 기만이구나.



“우리 그만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꿀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