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헤어지고 나서 그를 다시 만난 건 대학 시절 대외활동을 함께 했던 지인의 결혼식이었다. 약 10개월 만에 만난 그는 이전과 다르게 살이 많이 빠져 있었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연애의 이별을 잘 흘려보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쌓여 있던 미안함과 죄책감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 그가 힘든 시기에 온전히 함께해 주지 못한 것 그리고 가장 꿈에 부풀어 있던 시기에 고한 이별. 밝은 모습의 그를 보며 그는 이제 괜찮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 관계에서 쌓였던 죄책감에 대한 해방감 그리고 과도하게 즐거워 보이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약간의 섭섭함으로 복잡해진 나의 마음과 별개로 그는 그 자리에서 생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우리가 헤어지기는 했지만 좋은 친구이기도 했잖아? 부담 없이 친구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어.”
당시에는 이 말의 속내를 가늠하기보다는 표면적인 말 자체를 바탕으로 ‘친구? 헤어진 연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나?’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민을 시작했다는 자체가 이미 그와의 관계를 다시 정의 내리는 과정이라는 인지를 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나는 부족한 사회성만큼 인연의 맺고 끊음이 분명한 편인 사람이었다. 더구나 헤어진 연인과 친구 관계로 지내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 자체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도리어 남녀 사이에 무슨 친구?라며 고까운 웃음을 날리는 냉소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고까운 웃음은 바로 나로 향한 것이었다. 그와 재회 후 결혼까지 했으니 말이다. 친구는 무슨.
하지만 그때는 그가 이미 나와의 이별과 그 감정들을 모두 갈무리했다고 생각했고 또한 나 스스로도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나는 그를 예외적으로 나와 헤어진 경험이 있는 ‘남자 사람 친구’로 분류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너 춤바람 났다며?”
그렇게 ‘남사친’이 된 그와 친목 도모를 자주 하였다. 머릿속으로는 동창도 이렇게까지 자주 만나지는 않는데.. 하면서도 친구를 좋아하는 그의 기준에서 친구라면 이 정도로 자주 만나기도 하나 보지? 나 이전에도 연애는 계속했던 사람이니 헤어져도 쿨하게 여자 사람 친구로 잘 지내는 편인가? 하는 알쏭달쏭 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이야 그것이 친목을 위장한 ‘플러팅’임을 알지만 그때의 나는 참 순진했다. 알쏭달쏭 한 시간을 길게 가질 여유도 없이 그가 불현듯 이야기했다.
“우리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고? 아... 역시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나의 생각이 다시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내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
재회라.. 내 인생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애초에 다시 만날 것이라면 쉽게 헤어지지 말던가, 헤어졌으면 각자 인생을 잘 살던가, 어차피 사람의 기본 바탕은 변하지 않는데 똑같은 사람과 다시 만나서 똑같은 이유로 다투고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는 과정. 이 바보 같은 순환 고리가 재회에 대한 나의 인식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의 성숙과 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원적으로 사람이 꼭 성숙과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회의주의적인 나의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헤어질 거라면 그 반복의 시작이 무의미하며 재회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 재회의 선제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고, 그와 나의 현재는 무엇이 달라졌으며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생각을 잘 하지 않는 나의 생각은 점점 길어졌다. 나는 그의 제안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 재회의 고리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떠돌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굴레를 맴돌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
어느 재회 커플이 이별을 전제로 만남을 시작하며, 누구인들 이별을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나 역시도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이별이라는 고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재회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가장 오랫동안 이별에 대해 생각했고, 끊임없이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최악의 수들을 겪더라도 재회라는 카드를 사용할지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아 버렸다. 나는 지금 나답지 않다. 이미 그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나답지 않은 선택과 나답지 않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예외라는 조건하에 처음으로 이별한 남사친도 만들고, 진짜 남사친과는 해본 적도 없는 데이트를 하고, 재회라는 카드를 오랜 시간 고민하는 이 자체가 나답지 않았다.
보통의 나는 나의 뇌와 심장이 합심하여 스스로의 결정에 49% 와 51%를 잘 분류하는 편이었고, 한 번 선택한 이후 뒤를 돌아보는 경우가 적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선택들은 자꾸만 긴 고민을 하게 되고 내가 쌓아왔던 나의 생각에 변수를 만드는 일종의 뇌와 심장의 충돌사고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연쇄 충돌사고. 머리로는 재회했을 때 후회를 걱정했지만, 사실 이미 심장은 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가 더 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고민하던 나의 뇌와는 다르게 나의 심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리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