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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의 선물

by 낭만찬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한지도 1년 3개월이 지났다. 우리의 여행은 호주를 시작으로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섬나라들, 남미, 북미를 거치고 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을 경험해 왔고 아프리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 나라들을 여행하며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했다거나 직접적인 위해로 피해를 본 적이 없었다. 위험하다고 소문난 베네수엘라에서도 우린 별문제가 없었고 남미나 미국을 여행했을 때도 무탈하게 넘어왔다. 그래서인지 유럽으로 넘어와서는 긴장이 많이 풀려 있기도 했다.


우린 프랑스에서 차를 리스해서 3개월간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하고 다녔다. 유럽 여행 마지막 종착지는 이탈리아였고 리스한 자동차 반납을 며칠 남겨둔 시점에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탈리아 피사로 넘어와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우리는 해맑게 사진도 찍고 관광을 즐겼다. 실제로 보니 피사의 사탑이 더 멋진 것 같아 직접 올라가 보기도 하며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있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던 것이 우리는 차가 있으니 그냥 좀 늦게 숙소에 돌아가면 될 뿐이었다. 해가 지고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우린 주차했던 공영주차장에 돌아왔다.


“뭐야? 우리 차 왜 이래?”

“아 어떻게... 다 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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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해 두었던 우리 차에 창문이 깨져 있었고 차 안에 두었던 우리의 모든 짐들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관광하는 동안 자동차 강도가 차를 털어간 것이다. 원래 같았으면 귀중품들을 들고 다녔을 텐데 확실히 긴장이 풀렸는지 차 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것들을 두고 내렸었는데 한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트렁크에 있던 여행용 배낭과 캐리어 그 속에 있던 우리의 옷과 현금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여권과 정인이의 스마트폰까지 모조리 털어갔다.


“결국 한 번은 사고가 터지네”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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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상황에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지 기대했지만 그들은 이런 일은 너무 흔하다는 듯 컴퓨터 모니터만 보며 폴리스 리포트 써 줄 테니까 여행자 보험 청구해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찬이야 우리 망했다 그렇지?”

“근데 넌 표정이 왜 이리 밝아?”

“몰라 나도. 이런 일 겪으면 되게 난감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 나 미쳤나 봐”

“너 좀 그래 보여...”


자동차 강도가 남기고 간 서늘한 경험에 무서워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덤덤한 것을 넘어 편안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녀는 좀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유리창이 깨진 상태로 차를 타고 꾸역꾸역 여행을 이어 나갔다. 로마에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임시 여권을 발급받고 강도에게 털리기 전에 예약해 둔 아프리카 이집트로 향했다.


입고 있는 옷 한 벌, 신용카드 그리고 나의 스마트폰.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린 그 꼴을 한 채로 이집트에서 2주를 더 보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가 않아. 우린 더 이상 털릴 것도 별로 없어”


맞는 말이었다. 이집트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우린 가진 게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무일푼의 단벌 신사’가 딱 우리였다. 재밌는 점은, 편리함을 위해 가지고 다녔던 짐들이 없어지니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던 ‘낭만’과 ‘자유’란 향기가 강도에게 다 털리고 나니 비로소 가장 강하고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의 세계 여행은 끝이 났고 우린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경험했던 감격스러운 순간들을

적어도 너는 공감해 줄 수 있음에

나와 너의 일상은 매번 우리의 이야기들로

새롭게 재생되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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