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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받아서 저도 마음을 드려요

by 김주임

엣날 옛적에는 이런 이야기 있다. 이웃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고 심지어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 인지 다 알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같이 나누고 이사를 오면 떡과 함께 서로 인사를 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이웃사촌이라는 의미가 정말 사촌같이 가까웠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지금은 겨우 앞집 윗집 알까말까. 그나마도 출근 시간이 다르면 얼굴 한번 마주치기가 어렵다. 그나마도 서로서로 조용하면 얼굴 붉힐 일도 없는데 층간소음이라도 거슬리기 시작하면 서로 경찰을 불러댄다. 남보다 못한 사이.


관리사무소에 처음 출근을 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피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오늘도 무사히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매일.



"안녕하세요. 오늘 저희 집이 이사를 왔어요. 엄마가 떡 돌려야 되는거라면서 관리사무소에 가져다 주시라고 하더라고요."


"안녕하세요오. 이사는 어제 왔는데 떡이 늦게 나왔지 뭐에요. 사무실에서 나눠드시고오, 저희 잘 좀 부탁드려요옹"


쭈뼛쭈뼛다가와 수줍게 내미는 보따리. 우아한듯, 호탕한듯 밝게 인사하시면서 건내주시는 비닐봉다리. 그 안에는 시루떡이 들어있었다. 말 그대로 방금, 막! 떡이 나온듯 김이 모락모락나는 떡이라니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사떡은 30년 하도고 조금 더 산 나에게는 생소했다. 마트에서 간단히 산 과일은 돌리던 엄마를 따라 나도 결혼한 이후 처음 이사할 때 과일은 앞집 아랫집에 돌렸지만 떡은 맞춰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나에게는 생소한 이사 떡을 받으신 소장님과 대리님은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다.


"어머 뭘 이렇게 저희까지 챙기셔요."


"나눠야 이사하고 더 잘 산다잖아요."


"떡 따뜻한 것 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동 호수가 어떻게 되셔요."


떡을 가져오신 입주민은 소장님이 모시고 들어가 한참을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 하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김주임. 떡 먹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게 엄청 맛있겠다. 아직 떡을 여기까지 주시는 분이 계시네"


소장님의 부름에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하나 둘 모였다. 경리대리님은 한번에 6개 단지가 한번에 같이 입주를 받았던 화려한 경력이 있으셨는데 그때에도 정말 많은 떡을 받고 축하를 했다고 하셨다. 그때가 5-6년 전인데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뒤로는 서로 떡을 나누는게 많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옛날 어느 전설에는 당연하던 인사가 이제는 감동이 되어버린 시대가 된 것이다. 감동의 이사 떡은 입주 기간동안 5번인가 6번을 받았다. 모두 똑같이 이제 이사를 왔으니 잘 부탁드린다며 동,호를 남기고 가신분은 오히려 하나의 민원도 없이 너무나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


어떤 상황에도 친절히 전화 받으려고 작게 표시까지 해 두었지만, 재야의 고수인 듯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


이사 떡을 받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주차와 층간소음, 입주민이 생각하는 불만족에 대한 전화만 받다가 뭔가 '정'이라고 이름을 붙일만한 순간을 마주한 감동이다.


이런 입주민이 어린 아이에게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시면 정말 그렇게 지낼 것 같다. 선입견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떡을 주셨던 입주민은 민원도 없었고 관리사무소에 와서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여름에는 더운날 풀 뽑느라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사주셨고, 겨울에는 눈치우느라 고생한다고 커피를 사주셨다. 우리의 노력과 관심으로 일하는 것을 알아봐주시니 해당 동 쪽은 풀을 하나라도 더 뽑고 눈도 조금 더 치우게 된다.


마음을 받았으니 나도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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