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그 시대상으로 적절한 나이에 결혼하셨지만, 내가 늦게 태어났다. 50세가 정년퇴직을 해야하는 세대였으니 부모님은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서 걱정이 많으셨다.
"내가 널 힘들게 가져서 남들보다 좀 늦었어. 그래서 대학교 등록금까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솔직히 용돈은 못줘.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해."
참 솔직담백한 선언이었다. 나는 이 선언을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부터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서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기꾼의 기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그때부터라도 자기계발서 책도 읽고 경제서적도 읽고, 결혼같은 일륜지대사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뚫린 입 하나 건사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돈을 벌며 살아야 할까. 용돈은 어떻게 마련해야할까. 이런 경제적인것을 일찍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숭고하고 절절한 고백이었고 대단한 절규였다. 숭고한 절규속 내가 고1부터 지켜야하는 조건은 이랬다.
1. 집에서 학교를 다니되 4년제여야 할 것.
- 월세를 내줄 수 없고 세상에 딸 하나 있는 것을 멀리 둘 수 없다.
2. 휴학은 없다.
- 정년이 정해진 시한부같은 회사 생활속에 학교를 쉰다는 것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
3. 용돈 없다.
고2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고3이 되는 세해부터는 주시는 용돈을 모으고 집에서 다닐 수 있는 4년제 대학을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다. 그래서 수능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 할 수 있었고, 방학 이후로는 짧고 굵게 공장도 다니며 졸업때까지 수중에 150만원을 모아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때는 2007년 고3. 시급 3,480원 일 때의 이야기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수업을 월화수로 몰고, 목금토일을 아르바이트를 했다. 놀이공원, 학원, 마트, 식당, 공장. 다들 쉬운 아르바이트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했다. 그 답답함과 억울함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외동으로 자란 까끌까끌하고 사랑만 받고 자라서 비죽 솟아오른 성격이 깎이고 다듬어지고 쓸렸다.
그렇게 나의 웃는 얼굴 가면이 완성 되었다. 집에서 가서 울든 이불을 차든 최소한 월급을 받고 일하는 곳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소장님은 나에 대한 평가가 후하시다.
"요즘 MZ세대 치고 우리 김주임은 성격이 좋아. 아파트에서 처음 일하는 사람같지 않아. 나 같았으면 벌써 싸웠을 텐데 말이야"
뭐든 경험하고 배우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현실에 부딫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웠던 '생존 기술'이 아파트에서는 모두 다 필요했다. 지난 날 내가 울었던 시간들은 최종적으로 아파트에서 근무하기 위한 훈련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성향이 외향적이고 누구와도 친해지는게 쉬운 사람이라면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필요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내향적인 성격인데다 감정적으로 금방 무너지는 연약한 정신이라면 연습이 필요하다.
아파트에 근무한다면 다음의 민원 상황을 늘 가까이에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작지만 단단한 각오가 필요할 수 있다.
- 전화 민원
: 전화 받기를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받아야 한다. 전화의 내용이 단순한 문의 내용일 수 있지만, 전화의 첫마디부터 본인의 불만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전화일 수 있다. '당신', '아줌마', '그 쪽' 이런 호칭에 흥분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대응해야한다.
- 현장 민원
: 아파트 방침에 대한 민원을 직접 찾아와 말씀하실 수 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오는 분도 계시고,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달아올라 오시는 분도 계시고, 본인만의 예외적인 상황을 받아들여 주리라 생각하고 왔지만 강경하게 원칙대로 안내받아 점점 분노가 차오르는 분도 계신다. 이 때 '당신', '아줌마', '그 쪽'이라는 호칭이 나올 수 있는데 당황하지 않는 대응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아파트 소장님은 안 그러시지만 나와함께 근무하는 경리대리님이 전에 겪었던 소장님은 그렇게 화를 내면서 다가오는 입주민을 피해 숨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때는 나와 같은 서무주임을 지켜줄 사람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잘 넘어가는 스킬이 필요하다.
웃으면 웃는다고, 너무 무표정하면 그 표정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옅은 미소와 무표정 사이. 너무 말 없이 듣는 것 보다는 적당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소장님이나 대리님이나 어떤 구세주가 계시다면 잘 듣다가 본인이 해결이 안될 것 같다면 부탁을 드려볼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만약 누구라도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라면 단호하게 답변을 드릴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있다면 일단은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원칙대로 설명하되 겁먹지 말고 피드백을 받았으면 좋겠는지 아닌지 확인 한 후 빠르게 상황이 종료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혼자 있는 경우, 아무리 사무실 안에 CCTV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화내용이 다 담기는게 아니기때문에 흥분을 하면 아무리 설명을 했거나 들었어도 사람의 기억이란 본인 유리한대로만 기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는 말을 아끼는 것을 추천한다.
- 협력업체를 통한 민원
: 소장님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당직 근무자들 모두 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업무를 볼 수 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사무실에 항상 상주한다. 나를 제외한 관리사무소 직원이 나갔다가 민원을 받으면 받은 사람이 접수를 하고 직접 처리를 하거나, 해당 업무 담당자에게 이관을 한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니라 미화 업체 또는 경비 업체를 통해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것 역시 민원은 민원이지만 상대적으로 한 단계를 거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느껴지는 강도가 부드럽게 다가온다. 부득이 전화를 해야하는 경우에도 나에게 전달 되기까지 꾀나 시간이 소요되서 그런지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도 한결 누그러져 있다.
기분이 안 좋아도 웃고, 있는대로 다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말을 아끼고, 날카로운 말을 받아 부드럽게 굴려 대응을 하는 것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운 기술이었을 것이다. 특히 나의 '웃는 얼굴 가면'은 정말 어릴 때 배운것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귀한 가르침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한 나의 15년 사회 생활의 총 집합을 아파트에서 풀어내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렇게 힘든 감정 노동인데 왜 하나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굉장히 만족도가 높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노동으로서는 내가 지금껏 겪었던 회사에서 너무나 징글맞게 겪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문제로 인식은 하되 내 정신을 갈아먹지 않고 실적도 리스크도 없다. 그저 내가 받은 전화의 민원과 기본 사무 업무만 잘 처리하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공휴일과 임시공휴일을 다 쉬고, 9시에 출근해서 6시면 끝난다.
정 사무실이 답답하면 여름에는 소장님께 말씀드리고 잠깐 풀을 뽑으며 잡 생각을 정리하고 겨울에는 눈을 쓸거나 죽은 잡초를 뽑는다. 찬 바람을 맞으며 잡초를 뽑는것은 확실한 기분 전환이 된다. 여름에는 스트레스를 땀으로 빼고 겨울에는 덜덜 떨리는 추위에 다른 생각을 잊어버린다. 가벼운 육체 노동을 선택적으로 하면서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직장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쩌면 힘들고 고된 정신 노동임을 피력하면서도 나름 꿀같은 직장을 나만 알고싶은 이기적인 마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