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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주식회사

by 진순희


안개주식회사


이영식



구로동 인력시장

익명의 그림자들이 실루엣으로 흘러든다

삼삼오오 모여 선 유령들 팔과 다리를

새벽안개가 자르고 붙인다

이름도 뭉텅 떼어 김씨, 이씨, 박씨, 어이…

안개가 대기번호표를 나눠주고

제멋대로 잣대를 들이댄다

남루한 손에 쥐어줄 일당을 흥정한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사람들

봉고차에 굴비 두름처럼 엮여 실리고

몇 몇은 타이탄 트럭 화물칸에 부려져

스스스 안개터널을 빠져 나간다

퇴박꾼들이 드럼통 장작불 곁에 모인다

얼었던 손과 발이 녹아내리자

연장 가방보다 어깨를 짓누르는

하루, 안개가 선지 한 덩이를 물컹 뱉어낸다

(저 해의 긴 목을 무엇으로 칠거나!)

인력시장 사람들은

누구나 새벽 안개의 지분을 갖고 있다

휴지 조각보다 못한 그 주식을 차마

찢거나 태워버리지 못하고 돌아설 때쯤

유령회사의 휘장이 걷힌다

불 꺼진 드럼통난로 속

타다 남은 뼛조각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시간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난 족속들이

공구거리를 접수하기 시작한다.




인력시장.PNG ▲남구로역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출처 : 서울문화투데이(http://www.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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