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은 천형이었다
늘 외출을 꿈꾸는 트렁크
방랑은 천형이었다
베란다 한편에서 여행을 장전중인 바람의 DNA는
족쇄에 묶여 길을 놓쳤다
결혼기념일을 포장해 가방에 담고
그 작은 포구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때 첫 약속은 조가비처럼 하얗게 바래고
굳게 다문 약속의 톱니들
조금씩 닳아 조개 입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무엇을 담아 왔던가
샌들에 묻은 모래알과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던
끈 떨어진 슬리퍼를 파도 깊이 던져버렸다
등 돌린 밤만 담아오고
미처 챙기지 못한 마음만 그곳에 흘리고 왔다
지난여름부터 꽉 닫힌 트렁크
봄이 와도 입은 열리지 않는다
트렁크에 꾹꾹 눌러 담은 오해들
지퍼처럼 꽉닫힌 마음이 저 베란다에 버티고 있다
<<착각의 시학>> 2015, 여름호
진순희 시인
서울 출생
2012년 계간 <미네르바>로 등단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 수료
존 스튜어트 밀 인문고전 연구소 소장
진순희 국어논술학원 운영
제가 책을 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