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가을비 지난 뒤 마당을 쓸었다
낙엽 몇 이파리 빗자루에 착 달라붙는다
도쿄대학 어는 여교수가 명명했다는
젖은 낙엽族이 이런 모습일까
일에 시간에 쫓겨 마땅한 취미도
노년의 준비도 없이 퇴직한 저 사내,
낙엽 된 슬픔이 깃들어 있다
아내의 그늘 맴돌며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 할 때면 멍멍이를 품어 안고
차량에 맨 먼저 올라 타야하리라
밥 한 끼 지울 줄도 세탁기 쓸 줄도 모른다
속옷, 양말이 어느 서랍에 접혀있는 지
연장통엔 뭐가 들었고 두꺼비집은 무얼 하는지
반상회도 쓰레기분리수거일도 모르고
혼자 놀 줄도 모른다
아내라는 빗자루에 물먹은 낙엽처럼
착 달라붙었다가 어디론가 쓸리기 전에
설거지를 배우자, 접시를 깨뜨리자
단추를 달고 구두를 닦자
혼자 장도 보고 야채 값도 깎아보자
책갈피 답답한 논리로는 넘어서지 못한다
아버지의 의자는 크레바스에 빠져 사라졌다
남편들아 오늘, 새에게 먹이를 주고
어항 속 금붕어 똥도 치우자
빨래를 널고 개자
빗자루 끝에 달라붙은 낙엽 파르르 떨고 있다
<시를 읽고 나서>
이 시는 젖은 낙엽을 쓸다가 빗자루에 달라붙는 낙엽에서 '낙엽족'을 환유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이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낙엽족은 아무런 정년퇴직 후의 준비를 하지 못한 남성이 아내 주위를 맴돌며 젖은 낙엽처럼 떨어지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일본의 한 여교수가 명명했다고합니다.
책이나 신문을 읽다가 얻게 된 우연한 지식이 좋은 시를 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 도 합니다. '낙엽족'은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듯하고, "이사 할 때면 멍멍이를 품어 안고/ 차량에 맨 먼저 올라 타야하리라"는 시정의 우스갯소리에서 가져온 시행입니다. 남성이 이러저러한 가사에 무능한 것은 유교적 권위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경쟁위주의 직장생활에 찌들어 나이를 먹다가 퇴직하고 보면 가사를 배울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화자는 남편들에게 권유합니다. 낙엽족이 되어 쓸려나가기 전에 설거지를 배우고, 접시를 닦고, 단추를 달고, 구두를 닦고, 시장에도 가고, 새에게 먹이를 주자고 제안합니다. (공광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