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제대로 읽는 법,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 그리고 내 글을 책으로 엮는 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연필로 밑줄을 긋고, 도그이어로 접은 페이지에 흔적을 남기며, 문장들의 방식이나 멋진 표현에 주목하곤 하지요. 어떤 작품은 감탄을 넘어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또 그만큼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그런 제게 『책과 노니는 집』은 단순한 동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습니다. 이영서 작가가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보여준 이 작품은 역사 동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싶은 유혹이 분명 있었을 텐데, 작가는 이를 가볍게 비껴갑니다.
제가 만일 이 소재를 다뤘다면, 논술 선생의 입장에서 학습과 관련된 내용을 나일강처럼 끝없이 풀어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영서 작가는 한 걸음 물러섭니다.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와 삶의 결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 속에 생활상을 스며들게 합니다. 사회적 이슈와 학습적인 측면에서 거리두기를 하는 방식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조선 시대 천주교 탄압기를 배경으로, 밤낮으로 언문소설과 한자책을 필사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필사쟁이’ 아버지와 그의 아들 장이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아에 끌려가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납니다. 홀로 남겨진 장이는 책방 주인 최 서쾌의 도움을 받아 책방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장이는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갑니다.
작가는 도서관의 자료실과 열람실, 매점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는 ‘도서관 생활자’로서,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완성해냈습니다. 발품, 눈품, 손품을 아끼지 않은 그 노력은 작품 곳곳에 배어 있고, 덕분에 독자는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책과 노니는 집』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이야기의 정교한 구조입니다. 횡적으로는 장이의 성장 서사가, 종적으로는 조선 시대 천주학 탄압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며 서사가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습니다.
특히 상징과 복선의 활용이 뛰어납니다. 아버지가 고문 끝에 산송장이 되어 돌아왔을 때, 누군가 남긴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단서는 나중에 장이가 홍 교리의 천주학 책을 숨기기 위해 실마리를 찾는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국통감>의 일곱째 장에 ‘천주실의’의 내용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장이는 더 이상 단서를 찾지 못한 채 절망합니다. 그때, 서쪽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장이는 쪽마루에 놓인 주머니 속의 쪽지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서(西)’ 자를 힌트로 삼아 서쪽 서가에 있는 책들—<동국여지승람>, <동국이상국집>, <동국세시기>, <동국병감> 등을 찾아냅니다. 그 책들을 안채 부엌 아궁이로 가져가 태우고, 재까지 흔적을 없앰으로써 홍 교리를 구하게 되지요.
단서와 공간, 감정과 행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작품 속에서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표현 중 하나는 ‘마음 시중’이었습니다.
장이가 기생집에 팔려 온 낙심이에게 부적절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최 서쾌는 단호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전합니다.
"아버지 손에 끌려 어린 나이에 기생집에 팔려 온 아이한테 <심청전> 이야기를 해 주었어?"
-중략-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고, 장사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해."
-p.139
이 말은 단순한 꾸중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배려와 공감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말이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에도, 인간관계에도, 삶 전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장이 역시 이 경험을 통해 말의 무게를 배우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법을 익혀갑니다. 마음 시중을 배운 그는 더 이상 자기중심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을 위한 행동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 흐름은 결국, 앞서 언급한 홍 교리를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책과 노니는 집』은 단지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만이 아니라,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장이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간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쓰셨어요?”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 줄 이야기를 썼지.”
-pp.75~76
글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고, 꿈과 희망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아버지는 이어 말합니다.
“아비는 책방을 꾸미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약 값으로 헐고 싶지 않다
.책방을 차려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고, 새로 들여온 책의 자리를 찾아 주고 싶구나.단골손님이 오면 이야기책도 소개해 주고……
그렇게 사는 게 아비 꿈이다.”
-중략-
“평생 책 베끼는 일을 하며 책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이렇게 호사스런 직업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도 장이 너와 작은 책방을 꾸려 이렇게 살고 싶다.”
-p.77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글이 단지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태도, 그리고 꿈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결국 장이는 아버지의 오랜 꿈이자 자신의 소망이기도 했던 작은 책방을 현실로 만들어냅니다. 홍 교리는 언문으로 적힌 ‘책과 노니는 집’ 현판을 장이에게 전해줍니다. 최 서쾌는 아버지가 생전에 모아둔 돈을 건네며 그 꿈을 이루도록 돕습니다. 주위의 도움과 장이 자신의 노력, 그리고 아버지의 정신이 어우러져 마침내 꿈은 현실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꿈이라도 꾸준한 노력과 주변의 따뜻한 손길이 더해진다면, 그것은 반드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I have a dream”이라 외쳤던 그날처럼,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듯, 분명한 꿈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나침반이 됩니다.
이제 저는 저만의 ‘글과 노니는 집, 문유당文遊當’을 꿈꿉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공간.
작은 책방일 수도 있고, 글쓰기 수업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들로 가득 찬 아늑한 서재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것과 노니는 집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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