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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Sep 24. 2022

굿럭투유, 리오그랜드

나는 나를 제일 부끄러워한다

시간이 남았다. 같이 사는 남자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해 냉큼 친구와 저녁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말갛게 갠 날씨가 아까워 조금 일찍 나섰다. 좋아하는 경희궁로 근처이니 혼자서 좀 걷고 차도 마시려고.

막상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티켓을 받고 나니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내내 서서 와서 그랬는지 아니면 늙어서 그랬는지 딱 어디 앉고 싶은 마음만 남았다. 흠 극장 상영표를 보니 10분 후 시작하는 영화를 보면 30분후 딱 약속시간이 된다.

영화 포스터도 티케팅하면서 첨 봤으니 단 하나의 기대도 힌트도 없이 극장으로 들어 갔다.

"굿 럭 투유 리오그랜드"


이 영화 뭐지?

설마 했다. 응, 이게 뭐지? 호텔방, 젊고 잘 생긴 남자.

아 여자주인공이 엠마톰슨이지! 그렇다면 기다려보자!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 분 이상을 둘의 대화로만 채운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아 그런데 너무 재밌다, 정말!

평일 낮의 극장에서 서 넛의 중년들과 같이 깔깔 웃었다.

퍼스널서비스를 받겠다고 호텔 방에 남자를 부른 주제에 내내 몸을 비비 꼬며 부끄러워하고 진도 좀 나가려고하면 엄마같은 설교와 충고로 분위기를 깨는 낸시.

대배우의 연기에 하나도 꿀리지 않고 능글맞을 정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오역의 다릴 맥코맥.

아, 이 남자 배우 이야긴 꼭 해야겠다.

흑인 혼혈인것 같은데 좋은 유전자만 모아 놓았는지 그 매끄런 피부와 몸, 깊기가 가늠되지 않는 눈동자, 유연한 손끝, 부드러운 목소리와 착해보이는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블라블라...많이들 봤으면 해서 너무 좋았지만 영화내용은 그냥 스킵하고.

정말 놀라웠던 장면!

낸시역의 엠마톰슨이 마침내 스스로(!)행복의 순간을 마주하고 기쁜 마음으로 리오를 보내고 돌아서 커다란 거울에 섰을 때, 그 놀랍고도 기쁘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장면.


영화는 너무나 웃기고 간질간질하고 아련하고 좋았다.

친구와 함께 본 "사랑할 때 누구나... "보다 훨씬 더.

친구도 나도 늙은 여자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우린 또 늦어서 와인 한 잔 못하고 헤어졌다.

집에 들어 가면서 미안할 일도 없는데 늦어서 미안하다고 여러번 사과하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고 일없이 밤중에 걸레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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