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달리기를 잘했다. 8개월에 걸었다는 나는 뛰는 걸 좋아해서 언제나 하나로 묶은 머리를 요리조리 흔들거리며 뛰어다녔다. 길을 걷다 버스가 오면 달리기 시합을 하며 뛰었다. 저 쪽 건널목에 초록불이 켜지면 내달려서 건넜다. 넘어지지도 않고 귀에서 바람 소리가 나도록 쌩쌩 뛰었다.
아이들을 낳고서도 그랬다. 누굴 닮았는지(ㅋㅋ) 큰 아이가 8개월에 겅중거리고 걷기도 전에 뛰더니 잠깐만 한눈을 팔면 냅다 사라졌다. 대형마트와 서점, 백화점과 시장에서 놀이터와 공원에서 쏜살같이 뛰어 사라졌다. 덩달아 나도 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더 빨리 뛰어가 옷의 뒷자락을 잡아 쥐고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았다. 어느 날에는 장 본 것을 보관함에 넣는 그 잠깐 사이에 사라져 사색이 된 어머님이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고 제자리에서 어디선가 다다다다닥 어떤 발소리가 들리고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돌아와 서 있곤 했다
이후로도 한참을 뛰었다. 아이 학교 운동회 때마다 달렸고 두고 간 문제집이나 우산 같은 걸 가져다주느라 뛰었고 병실에서 간호사실로 뛰었다.
어느 날부터 뛰지 않는다. 저 앞에서 초록불이 켜져도 길 건너에 버스가 오고 있어도 다음에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걷는다. 일부러 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지만 남편을 출근시키고 가끔 일부러 뛰러 나간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오십 미터쯤 뛰고 또 오십 미터쯤 걷는다. 아? 잘 뛰어지지 않는다. 숨이 차고 무릎과 발바닥이 아픈 건 둘째고 일단 몸이 너무 무겁다. 이게 내 몸인가 싶게 굳어 있다. 가끔 높은 계단을 한 번에 뛰어내리면 쿵 하고 발뒤꿈치가 울린다.
공기를 가르고 몸이 탄력 있게 뛰어오르는 발걸음은 이제 되지 않나 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하기는 되지 않는 것이 달리기 뿐이겠나. 책을 오래 볼 수 없고 외출을 하고 들어오면 졸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어와 이름들, 익숙한 집에서조차 부엌으로 가다가 거실로 나가다가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 떠올리지 못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일.
어제 장례식장에서 나오며 이렇게 천천히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담다가 한쪽이 텅 비게 되는 날이 오겠구나 생각했다.
아직 가을인데 밤바람이 무척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