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딸이 어디 있다고
들리는 대로 말해보세요
귀, 귀
남, 귀
해, 이
꽃, 코
옷, 입
........
문장 중에 들리는 단어가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보세요
눈이 오는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모자와 구두를 샀습니다,
백화점에서 구두를 샀어요
나는 지하철을 타고..... ,
지하철?
아, 모르겠네....
어음 인지도검사에서 엄마는 한 음절의 단어는 13%
문장에서는 55% 를 듣고 인지했다. 문장 쪽이 나은 것은 문장의 맥락을 이어 단어를 짐작한 것 같다. 그나마 조금 나은 왼쪽 귀의 청력이 그 정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처음 검사했던 오 년 전과 비교해서 아주 많이 나빠진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 년 전에도 밀폐된 좁은 공간에 들어가 헤드폰을 쓰고 검사를 받는 엄마 뒤에 앉아 같이 들었다. 헤드폰 밖에서도 똑똑히 들리는 글자와 문장들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얼마나 놀랐던지.
오늘 다시 엄마 뒤에 앉아서 검사를 돕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는 정말 얼마나 답답할까.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역병의 시대에 상대의 입술도 읽지 못해 그저 빙긋이 웃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린애처럼 긴장을 해서 눈치를 보던 우리 엄마.
지난주에 꽃게를 잔뜩 사서 엄마한테 갔는데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길래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한다” 며 엄마 손에서 마늘을 빼앗아 앉아 계시라고 했다.
꽃게탕을 다 먹고 치우는 중에야 엄마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보청기가 빠져 있었다며 내내 흔들리던 눈빛을 반짝였다. 조용히 식사만 하시던 조금 전과 달리 사위에게 과일을 권하고 티브이에 나온 배우를 보며 반가워했다.
어디서나 귀때 문에 조금은 주눅이 들어 있는 엄마를 보는 일을 그렇게나 속상해하는 주제에 나 스스로 엄마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다.
얼마나, 얼마나 속이 상할까. 우리 엄마는.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니 문자가 온다.
“엄마는 딸 때문에 행복해”
“내가 무뚝뚝해서 미안해 엄마”
“우리 딸 같은 딸이 어디 있다고 그래, 엄마가 살갑지 않지 “
아침에 남편 한약을 따라 주다가 약봉지에 손을 베었다. 밤에는 바늘을 제자리에 꽂다가 검지를 찔려 피가 났다. 눈이 침침해 자꾸만 오타가 난다.
쓰라리고 아프고 약이 오른다.
오늘 밤에도 매일처럼 엄마 베개 옆에는 내내 끼던 보청기가 조심히 놓여 있겠지, 밤이 점점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