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찜과 밴드에이드
“손을 베었어”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엄마 앞에 수저를 놓는데 엄마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처럼 검지 손가락을 내 눈앞으로 들이밀면서 말했다.
“아, 아프겠다”
“아니 이제 안 아파”
말하는 엄마 검지 손톱 위의 상처가 빨갛게 벌어져 있다.
아침에 가방을 꺼내 물건을 넣다가 앞주머니에 밴드에이드가 들어 있던 것이 생각났다. 꺼내서 엄마 손가락에 종이와 속커버를 떼어 붙여주고 호 하고 불어주었다.
아프지않다던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 이제‘ 정말 안 아프겠다며 웃었다. 밴드가 붙어 있는 손으로 엄마는 꼬리찜을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어쩜 저렇게 잘 드실까
지난번 오래된 보청기가 성능이 떨어져 갔더니 본사로 보내야 해 한 달이나 걸린다고 했다. 몇 년 전 창피하고 어색하다고 그렇게 안 한다고 했던 보청기를 이제는 한 달이나 쓰지 않고 생활할 수가 없어서 간단한 고장만 수리하고 말았었다. 아무래도 새로 다시 구입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오시라고 했다.
처음에 보청기를 맞출 때 엄마는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잘 들릴 줄 알았다가 보청기는 말 그대로 그저 보조장치일 뿐이라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었다. 아름다음과 젊음이 끝이 났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귀에 저 낯설고 못난 것을 끼우는데 나빠지기 전처럼 다시 잘 들리는 것이 아니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나는 미리 엄마에게 일러두었다. 새로 보청기를 바꾼다고 갑자기 더 잘 들리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보청기센터에 가서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엄마는 다시 기사님에게 묻는다. 청력이 나빠지기 전처럼 잘 들을 수 있냐고.
엄마는 실망하기 전에 혹시나 하는 희망에 마음을 두었겠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감각과 감정에는 더없이 예민해지지만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한없이 묻고 헤매는 일 같다.
나는 지금 백화점 주차장에 와 있다. 입점 사간을 기다린다. 어제 지나가며 사드릴까 했더니 도리질을 치며 싫다던 패딩 코트가 생각나신 모양이다. 아침 7시에 잘 잤냐며 안부 인사하듯 슬쩍 묻는다. 어제 그 옷 교회 갈 때 입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같다. 지난번 이사 때도 그 순정한 욕구에 놀랍고 기뻤었다.
무엇이든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점의 문을 두드려 가져다주고 싶다. 아이처럼 내미는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고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싶다.
둘이서 꼬리찜과 수육을 아빠를 떠올리지 않고 남김없이 먹고 싶다.
아 문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