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허리가 아프구나
잠 속에서도 그녀는 깨달았다, 이건 신호다.
조금 더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몸에 걸쳐진 남편의 팔을 살짝 들어 올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보고 변기를 내려다보았다. 선명한 붉은빛.
오십 중반인 그녀를 아직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어제일처럼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여름방학 중 비상소집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션스쿨인 그녀의 학교는 방학중 하루, 학생들을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선교사 묘지에 소집해 시든 꽃과 잡풀 같은 것을 정리시키곤 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어딘가 깊은 곳이 묵직하게 아팠다. 낯선 통증이었다. 몸살이 나려나 하는 생각에 뙤약볕을 걸어 언덕 위에 있던 그녀의 집에 도착했고 바로 화장실에 들렀다.
변기에 떨어진 핏방울, 물속에서 천천히 퍼지며 가라앉던 그것을 보고 그녀는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들어 알고 있긴 하지만 그녀에게 온 이것이 정말 알고 있는 그것인지 아니면 정말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대로 죽기에도 억울했고 아니라면 알고 있는 그것이 맞는지 어서 공포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와 엄마를 찾으러 옆 집 영미언니네로 갔다. 민화투를 치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나 아파
어디가?
몰라 다 아파
그럼 집에 가서 누워 있어
그녀의 엄마는 건성으로 그녀를 올려다보곤 턱으로 집을 가리켰다
무언가 끈적한 것이 속옷을 적시고 새어 나오는 느낌이 들어 방에 들어와 속옷을 갈아입었다. 더러워진 속옷을 신문지로 똘똘 말아 대문 옆 쓰레기통에
버리고 책상 서랍을 뒤졌다. 설날에 받은 세뱃돈이 거의 그대로 있었다. 휴지를 말아 속옷에 대고 약국에 갔다.
후리덤 주세요
얼굴도 못 들고 아저씨약사에게 말을 하고 건네주는 대로 신문지로 싼 생리대를 들고 집으로 왔다. 집 마당에 서면 멀찍이 남고의 교실이 마주 보였다. 방학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아이 둘을 임신하고 젖 먹이던 몇 개월들을 제외하고는 생리는 아직도 31일 주기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생리대가 든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찬다.
아니, 아직도?
귀찮아서 어째, 그거 끊어지면 얼마나 홀가분한데.
세상 편하다야.
그걸 왜 아직도 하고 있어?
그러게, 나도 지겨워 죽겠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질병도 아닌데 그녀는 형편 안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웃는 것뿐.
아닌 게 아니라 새하얀 침구 때문에 생리 중에는 늘 잠을 설치고, 속옷을 겹겹이 입고 생리대를 하고 뙤약볕에서 골프라도 치고 있으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또 어렵게 날짜를 맞춰 간 여행지에서 생리가 시작되면 옷 하나도 신경 써서 입고 조심해야 했다. 불편하고 지겹고 징그러웠다.
한 달 전 어렵게 예약했다는 프렌치식당에 앉아서 그녀들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오랜 기간 그녀들의 식탁에선 시댁, 남편, 아이들, 입시 얘기가 끓어 넘쳤고 그사이 나름의 동지애도 생겼다. 아이들이 하나 둘 취업하고 독립하기 시작한 그녀들의 요즘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미용과 건강뿐이다. 뭉친 몸을 잘 푼다는 마사지사와 염색과 커트를 잘하는 미용실, 최근에 핫한 미용시술 얘기가 액수와 부작용까지 꼼꼼히 브리핑되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과 나이를 먹고 나서 변해버린 체질과 성격에 대해서 격정적인 토로가 이어졌다.
야야, 근데 너네 그거 먹어봤어?
뭐 말이야?
“***”
아니? 그게 뭐야?
야 그거 꼭 먹어봐.
갑자기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한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녀들은 모두 친구 곁으로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나 딸애가 사 준 그거 한 달 먹고 세상에, 생리가 다시 시작됐다니까.
정말?
눈이 반짝반짝해진 그녀들의 얼굴이 비장하다.
카톡으로 상품과 구입처가 공유된다.
유쾌하고 유익한 모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