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사물과의 관계.

by YUJU


나는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 그 것은 바로 결정장애.


이 것은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지만 특히 개인 소유용품이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일 경우 그 병세는 더욱 악화된다. 오늘의 나의 고민은 바로 신발. 모처럼 동생이 신발을 사준다고, 너무 편하고 예쁘게 잘 신는다며 언니도 한번 신어보란다. 이야 역시 열심히 밭을 가꾸어둔 보람이 있어. 동생이 돈 잘 버는 미혼 여성이어서 참 행복하다.


그렇게 첨부된 링크를 통해 브랜드 홈페이지로 들어갔는데 이런 아뿔싸! 색감부터 소재까지 너무나 내 취향. 어디 갔다 이제 왔니. 언니가 기다렸잖아. 방금 전까지 존재 자체도 몰랐고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던 그 플랫슈즈가 갑자기 마스크보다 더 필요한 나의 생활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딥슬립, 모로칸 러그, 샌드 캐슬.. 이름은 또 왜 이렇게 예뻐. 숨어있던 제 2의 자아는 이때다 싶었는지 잠들어 있던 나의 욕망을 정확히 가격했고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며 무기력하게 쓰러지고야 말았다.


저녁시간 내내 이 색깔, 저 색깔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은 오랜만에 나에게 뼈아픈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너 왜 고르기 힘든 줄 알려줄까?
어, 나 진심으로 너무 힘들어.
가지고 싶은게 많아서 그래.
오…? 한 개만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싶어서 결정을 하질 못하는 거로구나!
욕망을 자제할 수가 없는 거야. 와 난 내가 소심해서 그런 줄 알았잖아. 대박.
그 말도 맞고.


흥, 코웃음 치며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도 그냥 대충대충 고르고 흘려버리는 단순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난 사람관계보다 사물과의 관계가 그렇게 어렵더라.


사람은 청기 백기 바로 들 수 있는데 (물론 세월을 쌓은 관계 대부분은 시작점을 찾을 수 없는 배배 꼬인 실타래 뭉치이지만) 어째서 물건은 이렇게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매번 시험에 들게 할까? 너 나랑 초면이지 않니? 초면부터 이렇게 막 들이대고 말이야. 그럼 못써..


나는 낭비를 하는 것이 싫은가? 아니면 그저 내 취향을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야 아니야..


내가 확신을 갖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하기까지 오래 걸릴 뿐이야. 특히 인터넷!! 아아 그래 그것이다. 나는 인터넷 쇼핑이 어려워. 직접 보고 나와 맞추어 보면 딱 아는데. 얘는 나와 함께 간다. 너는 아쉽지만 다른 인연을 찾아보렴 안녕. 그래 이거야 이거. 나와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내려니 이렇게 힘이 든 것이야. 빙고!!


아 큰 숙제를 하나 푼 기분이다. 나는 언제나 온라인으로 무엇을 고르고 구매하는 일이 어렵다.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물건은 혹 쓸모가 없다 하더라도 대체로 우연의 기회로 닿은 장소에 나의 시선과 손이 머물러 특별한 추억으로 삼는다던지 평소 취향에 합격점을 받아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영국 프리마켓에서 산 작은 벨벳가방도 그 중 한가지. 모서리가 닳아 그 부분만 색이 좀더 하얀 짙은 남색 미니 크로스백. 양 쪽에 달린 금색 링은 바랬고 요즘엔 잘 안 쓰는 줄줄이 사탕 모양이었지만 그래서 더 눈이 가고 특별했다. 크기는 쥐포 두 장 만한데다가 두께도 서류봉투 정도밖에 안되어 한 마디로 효용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궁궐장식을 한 옛날 예식장이나 지하철 1호선의 의자처럼 거칠고 부드러운 벨벳 표면과 빛 바랜 네이비 컬러, 촌스러운 금색 장식이 오래된 할머니 사진에서 본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 결국 데리고 왔고, 역시나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가방은 여전히 나의 20대의 특별한 어느 한 때를 떠올리게 하고 종종 나를 대신하여 내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소중한 친구로 남아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온라인에서 이 가방을 보았다면? 당연히 나는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너무 낡았고아마도 이 상품을 받아본 다른 구매자들의 악평을 보았을 테니까. 온라인은 대충 보는 순간 내가 호구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여기저기 비교하느라 시간을 써대기 일쑤이고 타인의 상품평은 책임지지 못할 말들로 가득하며 더군다나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알 길도 없고 나중에 억울하다고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최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상상력을 쥐어짜내 고르고 골라 결정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한가지, 나는 온라인 세상과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가 없는 사람. 탕탕탕.


복잡하고 치열한 내적 갈등 끝에 마음을 다잡아 주문하고 두 밤 정도 지나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떨리는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택배 상자를 날렵하고 섬세한 손 동작으로 칼집을 내어 조심스레 연다. 마치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보듬듯 손에 힘을 빼 꺼내고 포장을 풀어 본다. 바로 그때 극명한 두 순간만이 존재한다. 으악 좋아 잘했어! 난 역시 신중하고 옳은 결정을 한거야! or …… ㅆ


그렇게 색상을 바꾸거나 교환 환불을 하기도 여러 번. 온라인 쇼핑이 반복될수록 나는 노하우를 쌓기는 커녕 화분에 물주듯 나의 병만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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