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과거를 곱씹고 싶을 때, 추억을 그리워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그에 상응하는 음식을 찾아내고야 만다. 학창시절에 대한 일화를 나누며 과거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각자 생각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향수는 현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소소하게는 하루 세번 의무적으로 챙기게 되는 매 끼니가, 주기적으로는 명절이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떠오르는 특정음식이 그러하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할 때, 첫 눈이 내릴 때,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마음속의 음식을 유추해낸다.. 이것은 때때로 다른 음식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직접 요리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기억 속 정확한 그 맛의 실현은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다. 지나온 시간과 변화된 환경 속에 미각이 적응했기 때문에.
나의 경우 그리워하면서 눈앞에 두고도 마시지는 않을듯한 음식은 바로 코코아다.
어느 날엔가 하교길에 비가 왔는데 우산이 없어 쫄딱 젖은 채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아마도 미처 마중 나오지 못한 것이 내심 미안한 듯 서둘러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푸드득 털어내고 나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작고 앙증맞은 미키마우스 커피잔에 김이 나는 코코아가 놓여져 있었다. 그 코코아는 내가 성인이 된 후 먹어본 쌉쓰름하고 혀가 안으로 말릴 것만 같이 무자비하게 단 여느 코코아와 달리 첫 맛은 제법 달달하지만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이미 맹물이 되어버리는 맹탕같은 제티 코코아였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던 초등학교 어린 시절, 유리로 된 컵과 받침이 함께 구비되어 있는 커피잔 세트는 나에게 오직 코코아를 마실 때 허용되는 도구였으며, 그 잔에 담긴 코코아를 마신다는 건 마치 영국왕실에 초대된 백작부인처럼 어른대접을 누리는 호사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비가 추적거리는 날이면 그 고동색의 탁한 코코아가 생각난다. 진득하고 어지러운 다크초콜릿에 마쉬멜로우를 넣은 코코아와는 도무지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어색한, 유아용 미키마우스 커피잔세트와 동일시되는 나의 유년시절 코코아.
성인이 된 이후 내가 기억하는 음식의 맛을 다시 재정립하게 되는 경우는 또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빠스’와 같은 겉은 바삭하고 물엿을 고체화한 것처럼 단맛이 강한 고구마맛탕과 엄마가 해주던 퍽퍽하고 표면에 올리고당이 살짝 코팅만 된 시늉뿐인 맛탕. 설탕과 텁텁한 고추장의 맛이 태초에 한가지로 태어난 듯 서로 뒤엉켜 진득하게 눌러붙은 떡볶이와, 묽은 국물에 양파와 당근과 파와 같은 야채와 더불어 소고기까지 들어가고 떡에 매운맛이 배어들려면 사골처럼 적어도 하루는 고아야 할거라고 말하는 듯 쌀떡 본연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엄마표 국물 떡볶이.
대체로 ‘건강식’으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지금 나에게 더 맛있는 것을 고르라면 성인이 된 이후 내가 정의한 ‘새로운 맛’이다. 이것은 맛의 우월함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현재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현실적 타협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잊고 지내던 이 낯설지만 익숙한 맛은 때때로 툭 하고 떠오르곤 하며 나는 이 비밀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을 더듬어 찾게 된다. 음식이 사람으로 이어지는, 결국 함께하고 나누게 되는 것이 음식의 본질이 아닐까.
나의 음식들의 공통 키워드는 바로 엄마. 엄마와 함께 보낸 초등학교 시절은 음식에 대한 기억으로 고스란히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주로 엄마가 해준 것을 받는 입장 이었으며 그것은 매 끼니 차려준 음식도 포함이었다. 엄마가 외출할 때에는 랩에 씌워진 돈까스와 감자튀김 세트, 특별한 경우 전자레인지 덮개에 숨겨진 비상금으로 사먹는 외식.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가장 특별하고 생생한 기억이며 그때에는 모르고 지났을 평범한 순간들이 아늑한 환상처럼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평범한 잔상이 크리스마스 때에 받은 선물보다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나는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거나, 엄마가 아이 곁에 24시간 붙어있어야만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스스로 여기는 삶의 만족도가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득 나의 추억 속 음식이 떠오를 때, 이런 경험을 내 아이에게 선사하고 마음에 새겨줄 수 있다면 또 함께 공유하며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아마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비가 오면 코코아를 내어줄 것이고 어느 날엔 소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은 떡볶이를 만들어 줄 것이다. 맛이 없어도 괜찮다. 나로 기억되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뒤바뀌지 않는 절대 미각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