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가 왔다.
쏟아지는 카톡 광고 홍수 때문인지 요즘은 문자 메시지에 더 시선을 두게 되는데, 한때 적을 두었던 대학원에서 온 본인상 부고였다.
'올해 우리 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고 김 OO 동문께서 천국 입성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김 OO?
본인상이라는 단어와 함께 온 문자에 마음이 몹시도 먹먹했다. 그녀와의 기억나는 인연은 분명 없으나 석사 학번이 나와 2년 차이가 나기에 재학 기간 동안 학과 어디선가는 마주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그 이름이 목에 걸렸다.
그리고 다시 문자를 곱씹으니 기가 막혔다. 올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우리 대학원 박사 수료 12년 차로서, 이미 학위 논문은 물 건너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며 학과에서 오는 다양한 연락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신세에 난 이제 그 자책감조차 희미해진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세상은 박사 논문을 쓴 자와 못 쓴 자로 나뉜다. 못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은 아니고, 그저 박사 학위 취득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있다. 길게는 10년 동안 학위 논문에 매진한 선배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얼마나 기나긴 고통 속에 쓰여지는 것이 학위논문인지 알기에 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올해가 채 가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한 그녀의 사정이 애달팠다. 급작스러운 사고인 걸까.
며칠이 지나도 머리 위를 떠 다니는 이름에 결국 나는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에 이르렀다. 흔치 않은 이름에, 이 분야 전공에 있어서 저명한 우리 대학의 박사 학위 논문까지 쓴 분이니 분명 인터넷 검색에서 무언가는 건져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름 석자와 전공을 넣어 검색을 시도했다. 무엇을 더 알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몰랐다. 그저 자꾸 되뇌어지는 이름을 어서 떨치고 싶었는지도.
그랬더니 한 영상에 전공과 관련하여 찍은 그녀의 모습이 잡혔다. 그 얼굴을 보아도 안면은 없다. 마주친 일은 없었다 보다. 본의 아니게 생전 얼굴까지 눈에 담으니 당분간 내칠 도리가 없겠구나.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화면을 다시 보니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뜬다. 아. 그 책을 보니 그녀의 부고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책은 암 환자와 재활 치료를 맡은 의사가 함께 쓴 출판물이었다. 출판일은 2023년. 서로의 두 글자 이름을 다정히 부르는 것을 보니 이 환자와 의사는 아마도 절친이었거나, 절친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거기까지.
그러고 나는 인터넷 창을 그만 닫았다.
여러 모로 비슷한 길을 걸었던 한 얼굴 모를 동문의 부고는 그렇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어릴 때 읽어 주던 책에 '아픔아 아픔아 모두 날아가라'는 제목의 동화책이 있었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상처를 호호 불어주며, 열이 오르고 기침에 잠들지 못할 때 아이를 작은 가슴을 다독이며, 그 동화책 제목을 읊조려 주었었다.
괜찮다면, 그녀에게 그 동화책 제목을 나직이 불러 주고 싶다.
아픔아, 아픔아, 모두 날아가라.